“양금덕 할머니, 한·일 우호 미명에 좌절”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양 할머니 3자 변제안 수용 입장문
작성 : 2024년 10월 24일(목) 17:20 가+가-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들을 지원해온 시민 단체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의 3자 대위 변제안 수용에 “한·일 양국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압살해온 결과”라고 성토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24일 입장문을 내고 “일본의 사죄와 미쓰비시의 배상을 위해 앞장 서 온 양 할머니와 함께 역사정의를 세우기 위한 발걸음이 여기서 멈춘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단체는 “양 할머니의 좌절은 윤석열 정권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며 “일본이 하나를 요구하면 두 가지를 스스로 내 준 윤 정권의 친일 퍼주기 외교, 피해자의 목소리를 압살하기 위해 헌법 취지를 위반해 대법원 판결의 역사적 성취마저 뒤엎은 윤 정권에 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윤 정권은 대법원에 계류 중인 강제 매각 사건에 대한 판결을 가로막고, (양 할머니에 대한)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방해에도 나섰다”며 “일본과 공조해 국가가 자국민의 목소리를 이중, 삼중으로 협공 압살하는 상황에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96세 양 할머니 측의 선택지는 갈수록 협소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죄가 우선’이라던 양 할머니는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을 압살해온 한일 공조에 무릎이 꺾였다”이라며 “양 할머니의 역사 투쟁은 여기서 멈췄지만 윤 정권에 맞선 역사 정의 투쟁은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1929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양 할머니는 1944년 5월 나주보통공립학교 6학년 재학 중 일본인 교장의 감언이설에 속아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 공장으로 끌려갔다.
전쟁에 쓰일 비행기를 만드는 공정에 투입된 양 할머니는 1945년 10월까지 17개월 간 강제로 노역을 당했다. 1944년 겪은 대지진 당시에는 나주에서 함께 건너온 친구, 선배 6명을 잃고 어깨도 다쳤다.
해방 직후 “조선에 돌아가 있으면 임금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미쓰비시중공업은 양 할머니 등 피해자들의 존재를 부정해왔다. 이에 양 할머니는 1992년 2월 고(故) 이금주 여사가 이끌던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에 가입, 미쓰비시의 사과를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2018년 11월에는 대법원으로부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확정 판결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정부가 민간기부금에 따른 제3자 대위 변제안을 근로정신대 피해 배상안으로 공식화하자 양 할머니는 노구를 이끌고 집회에 참여하며 반대 목소리를 전해왔다.
그러나 전날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른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수령했다. 양 할머니가 수령 의사를 직접 밝혔는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양 할머니의 배상금 수령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에서는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 없이 변제 금액만 지급된 채 배상 절차가 종결되고 말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세종 기자 nak019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