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는 가라앉고 있는데도 국민들이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는 큰 폭으로 치솟고 있다. 지난해 여름 이어진 폭염과 가뭄으로 채소와 과일 가격이 크게 오른데 이어, 최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덮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소비심리가 악화, 다시 경기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선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가능성마저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대형마트 등에선 달걀 한 판(특란 30개 기준)이 1만원에 육박했고, 지난달 기준 배추 값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91.9% 뛰어올랐다. 밥상 단골 재료인 양배추, 무, 당근, 파 등도 각각 211.3%, 150%, 112.2%, 32.3% 상승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
전체적으로는 1%대라는 저물가 수준이지만 국민들의 실생활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대비 6.5%나 뛰어올랐다. 이는 2010년(21.3%)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월세를 포함한 생활물가 지수도 전년 대비 0.8% 올랐다.
최근 AI 여파로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계란과 국제유가 상승으로 계속 오르는 휘발유 가격이 지난해 12월 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더욱 큰 폭으로 뛸 가능성이 크다.
완만한 물가 상승은 디플레이션을 차단해 침체에 빠진 경기에 자극을 줄 수 있지만, 성장이 없는 불황 속에서의 가파른 물가 상승은 가계의 소비심리만 더욱 위축시켜 결국 내수 부진과 경기 침체라는 악순환을 유발할 수 있다.
가뜩이나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코리아세일페스타 등 정부의 소비 진작 정책 종료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최순실 사태 등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소비가 급격히 위축된 상황이다.
소비절벽은 이미 상당 부분 현실화 됐다는 평가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월평균 지출이 100만원 미만인 가구(2인 이상 가구 실질지출 기준)는 13.01%에 달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권인 2009년 3분기(14.0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12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4.2로 2009년 4월(94.2) 이후 7년8개월 만에 최악의 수준을 나타냈다.
정부와 국책 및 민간 연구소들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내려잡으며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소비 둔화를 꼽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내놓은 ‘2017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인 3.0%에서 2.6%로 낮춰잡으며, “연간 민간소비는 미국 금리인상과 유가상승, 가계부채 등의 영향으로 2.0% 증가하는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2.4%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LG경제연구원도 올해 경제성장률을 2.2%로 전망하며, 특히 민간소비 증가율이 2.4%에서 2.0%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LG경제연구원은 “유가 상승이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떨어뜨려 내수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대내외 불확실성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지면서 경제주체들의 소비 및 투자활동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달 21일 출입기자들과 가진 ‘만찬 간담회’에서 “2017년 우리 경제의 관건은 위축된 소비심리를 되살리는 것”이라며 “수출은 여건이 좀 나아질 것으로 보이고 건설투자는 신장세가 둔화되겠으나 나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물가 급등 현상이 아직까지는 신선식품에 제한되고 있어 스태그플레이션을 논하기엔 이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나, 경제가 한번 스태그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지면 헤어나오기란 상당히 힘들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사전에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향후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내수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저성장(고실업)·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되면서 서민생활이 크게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