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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에서 벗어나기
최 수 호 현대행동심리연구소 소장
작성 : 2015년 06월 17일(수) 18:00 가+가-
우리는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말을 듣고 그럴듯하여 이해가되면 믿어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 일쑤다. 특히 국가원수, 장관, 사장, 교수처럼 권위 있다고 알려진 사람, 과학자, 기술자, 의사처럼 어느 분야의 전문가라고 여겨지는 사람의 말이라면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무조건 받아들여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처럼 우리는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습성이 아주 미흡하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낭패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권위자나 전문가도 과거에 실수를 저질렀으며 앞으로도 실수하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을 무작정 믿어서는 안 된다. 특히나 과학에 영원한 권위자는 없다. 오직 어느 분야의 전문가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확신하는 지식정보라 해도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라.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할 모든 문제들에는 찾아내야할 진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믿고자 하거나 믿는 것에 대한 사유를 꼼꼼히 따져보고 다른 생각들과 객관적 비교를 통해 철저한 비판과 냉정한 판단을 하도록 하라. 설령 믿고 싶지 않은 것을 간직하고 버리고 싶은 확신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가 주변으로부터 핀잔의 지적을 받았던 경험들을 상기해보라.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맹목적이고 어리석고 하찮은 것들이었는가를 되돌아보게 할 것이다. 그러니 검증되지 않고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느껴지는 명제는 과감하게 피하거나 보류하는 슬기로움을 가져라. 특히 훌륭하게 설명되어지는 것일수록 철저히 검증절차를 밟아보라. 우리는 삶에서 접하게 되는 모든 정보에 일단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지혜로운 태도를 갖춘 삶을 살줄 알아야 본의 아니게 실수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를 위한 부정이나 비난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올바른 긍정을 찾아가기 위한 부정적인 면을 검증해보라는 것이다. 하나하나가 각각의 고유한 전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늘 생각하면서 그 고유성의 진실을 의심하고 확인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어떤 가정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반박하지 못할 수도 있고, 잘못된 정보로 또 다른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다만 습관적으로 의심해봄으로써 검증할 기회를 가져보고 확인절차를 거쳐 가면서 세심하게 추론과정을 되짚어가는 지혜를 길러 자신을 신중하게 다루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로 생각의 관성에 젖어 무심코 대응하는데 익숙한 편이지만 크게 놀라운 경이로움을 경험하는 순간 선입견이나 기존의 믿음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경이로움을 느낄 때 감탄한다. 그런데 경이로움을 느끼는 감탄은 이미 뇌리에 입력된 정보에 따른 생각의 관성 즉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서 벗어나 섬뜩한 지혜를 열개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경이로움을 느낄 때 생각의 확장이 일어난다. 그리고 주변을 조금만 깊이 성찰해보면 놀랍고 경이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이를테면 일상에서 매순간 경험하는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라. 그러면 언어의 기능과 언어의 힘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언어생활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는 말을 통해 질문하고 대답하고, 명령하고 복종하고, 긍정하고 부정하고, 원하면 다양한 형태의 말을 구사하고, 처음 듣는 말도 이해하는 능력을 보인다는 사실에는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말은 즐거움을 안겨주고, 슬픔을 잊게 하고, 연민을 품게 하고, 설득하기도하고 설득당하기도하고,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처럼 포장하기도 하는 등 말의 교묘한 힘이 우리의 혼을 흔들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언어의 조작기술에 기만 당하기도하고, 추론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따라서 평소의 언어생활에 진지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가 그렇게 간단한 대상이 아니라 언어도 가면을 쓴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한다. 언어를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어휘가 추상적이고 부정확하며 애매하여 맥락에 따라 의미가 변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가리키는 내용과 말에 내포된 의미가 유발하는 정서적 반응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나의 어머니는 금년 70세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포근한 안식처와 같다”에서처럼 ‘어머니’라는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지만 내포한 의미는 모두 다르다. 따라서 받아들이는 감정적 반응도 사뭇 다르다. 그리고 부수적 피해=(민간인 사망), 화해를 위한 시설=(강제수용소), 급습=(침략), 방어를 위한 공격=(폭격), 전략적 후퇴=(아군의 후퇴), 고문=(지배를 위한 통치자)처럼 전시에 사용되는 완곡한 표현과 직설적 의미(괄호 속)를 비교해보라. 하나의 현상이지만 완곡한 표현과 직설적 표현이 주는 정서는 사뭇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접하는 현상을 표현할 때마다 단어의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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