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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 성역없이 수사해야
이 준 구 주필
작성 : 2015년 04월 20일(월) 17:43 가+가-
화산은 평상시는 밑으로 침전해 있지만 때로 폭발, 분출돼 마그마를 쏟아 낸다.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사건’은 그 화산 중의 하나다.
과거에 ‘차떼기’사건도 있었다. 간헐적으로 대선 자금 수사가 이어졌지만 그때 뿐이고, 정치와 금전의 관계는 숙명처럼 붙어 다녔다. 아무리 파장이 크고 여러 사람이 다쳐도 정치자금은 개선되지 않았다. 또 개선될 수도 없었다. 때때로 터졌다가 봉합되고, 또 터졌다가 다시 아물기를 끝없이 반복했던 것이다.
여야는 지금 ‘고 성완종 리스트’를 놓고 서로를 묽 들어가려고 야단이지만 정치권 전반으로 보면 아마도 안드러나고 넘어간 케이스가 몇 배 더 많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시신이 없는 살인사건과 같다고 본다. 고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 수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에 드나들 때에 심증은 있지만 정작 물증 인증이 부족해 기소가 어렵거나 재판에서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증거법리를 잘 알기 때문에 고 성 회장의 메모에 금액이 똑떨어지게 적힌 사람들도 일단 잡아떼는 것 같다. 이들은 ‘재수 없어’ 도마 위에 오른다고 한숨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사법절차와는 별도로 1997년 ‘제2의 정태수 사건’처럼 정치권의 인적쇄신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한보그굽 회장 정태수씨가 검찰에서 돈을 주었다고 자백한 정치인이 무려 33명에 달했다고 한다.
정 회장은 정치를 하지는 않았지만, 성 회장은 정치와 기업을 겸했으니 돈을 준 숫자가 몇 배 더 많을 것이다. 독학에 자수성가한 기업인들은 시장 바닥의 텃세를 이겨내고 하급관리의 권세와 결탁해 사업을 키웠다. 그래서 돈만 받아 먹고 정작 어려울 때 도와달라는 말을 거절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강했다.
여야는 14일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 문제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 새정치현합 문재인 대표는 이 총리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 총리가 총리직을 갖고 검찰 수사를 받는 게 적절한지 깊이 고민했지만 입장 정리를 못했다”고 유승민 원내대표가 밝혔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은 검찰에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총리부터 수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논란의 집접적 계기는 14일자 경향신문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 직전 인터뷰에서 “이 총리가 2013년 4월 부여, 청양 재.보선에 나섰을 때 선거 사무소를 찾아가 현금 3000만원을 줬다”고 주장한 부분을 공개하면서다.
보도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이 총리가 당시 회계 처리를 했느냐”는 물음에 “뭘 처리하느냐.(이 총리가 꿀꺽 먹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총리는 이날 국회 답변엔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며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이 총리는 기자들에게 “돈 받은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면 (총리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도 했다.
자원 외교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는 죽기 전 이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구명’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의 돈 전달 주장이 이 총리에 대한 원망이나 사감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국 두사람 중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가려내야 할 책임은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나선 검찰의 몫이 됐다. 홍준표 경남지사도 정치적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성 회장이 돈을 주었다면 홍 지사가 당 대표가 될 경우에 대비해 공천을 부탁하기 위한 뜻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성 회장은 죽었지만 전달책이 검찰에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하니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친인척과 측근 비리가 없다는 것을 최대 강점으로 자부하며 이번에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친이(친이명박)도 견제하면서 공무원의 기강도 잡고 국정의 동력을 회복하자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정권을 향해 쏘았던 미사일이 부메랑으로 날아와 아군 진영 한복판에서 폭발했다. 박 정부에서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 3명이 연루돼 있다. MB정부 기획사정이 단박에 박 정부 ‘자해사정’으로 풍향이 바뀌었다. 박정부는 검찰의 성역없는 수사를 보장해야 한다. 우리 정치는 이제 지리멸렬해질 것이다. 외교.국방의 난제를 안고 경제의 침체에서 벗어나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우리 정치가 표류하는 사태가 온다면 이야말로 국가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심히 우려된다. 청와대와 국회, 검찰이 절체절명의 각오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이제 이 나라가 바람 앞에 촛불이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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