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와 자유, 정의를 기치로 내걸고 한국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열었던 4·19 혁명이 일어난 지 올해로 55주년을 맞았다. 어제 오전 10시 국립 4·19민주묘지에서는 기념식이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거행되었다. 이날 기념식에는 현재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거론되며 곤혹을 치르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가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을 대신해 정부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고 그 외 3부 요인과 각 정당 대표 및 유가족, 관련단체와 시민 등 2,500여명이 참석해 그날의 민주혁명 정신을 기렸다. ‘4·19정신으로 갈등과 분열을 넘어, 미래로 통일로’ 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기념식은 국민의례와 헌화, 분향, 4·19혁명 경과보고, 기념사, 기념공연. 4·19의 노래 제창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 외에도 각종 기념행사 및 문화행사와 각 지자체별 행사를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높은 뜻을 기렸다. 5년 전인 지난 2010년에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3·15의거가 반세기만에 역사적 재평가를 받아 국가기념일로 지정이 되어 50년 만에 장례식을 치르게 된 김주열(1943-1960) 열사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횃불이자 현대사의 전환점이 된 4·19혁명은 지난 1960년 3월15일 치러진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자유당의 집권연장을 위한 부정이 드러나며 경남 마산의 3·15의거를 시작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전 국민적인 열망이 표출되어 학생들이 주도하고 지식인과 서민이 구축하여 성공한 역사적 혁명이었다. 이 혁명의 도화선이 된 마산의 3·15의거는 자유당 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자행했던 1960년 3월15일 오전 민주당 마산시 당이 선거포기와 무효를 선언함으로서 시작되었다.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는 사전투표와 3인조의 반 공개투표, 그리고 대리투표와 야당참관인 축출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은밀하게 이뤄졌다가 양심적인 한 경찰관의 폭로로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마산시민들의 항의가 거세지면서 “협잡선거 물리치자”는 구호를 외치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대규모시위로 확산되었고 경찰은 이를 제지하기위하여 실탄발포로 대응을 하는 바람에 민간인 8명이 숨지고 70여명이 부상당하는 유혈사태가 벌어져 수백 명이체포 되고 구금되었다. 그리고 시위대의 일원으로 항거하던 17세의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 학생이 어디론가 실종되고 말았다. 경찰의 강경한 무력진압으로 시위는 한동안 주춤하는 듯 했으나 그로부터 27일 뒤인 4월15일 오전 11시께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체류탄이 박힌 채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떠올라 리승만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이에 마산전역은 다시 시위물결로 뒤덮이기 시작했고 “재선거와 학살경관 처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는 가운데 또 다시 경찰의 발포로 2명이 희생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급기야 폭발하기 시작하여 서울을 비롯한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편 4월18일 서울에서는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종로일원에서 수십 명의 괴한들로부터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점점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에 국민들의 인내는 한계에 달했고 급기야 4월19일에는 구름처럼 몰려든 시위대가 경무대까지 진출해 “리승만 물러가라!”며 연좌시위를 벌이자 정부는 다급한 나머지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대를 향해 발포명령을 내림으로서 180명의 사망자와 6천여 명의 부상자가 속출하는 참상으로 번져갔던 것이다. 4·19 혁명은 당시 리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자유당 정권의 붕괴로 완성되는 듯 보였지만 이듬해 일어난 5·16군사혁명과 이어지는 12·12쿠데타로 인한 27년간의 군부정권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기나긴 시련을 맞게 된다. 그러나 4·19혁명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10민주항쟁에 영향을 미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실현의 중심이 되었다. 자유와 민주, 그리고 정의가 기본정신인 4·19혁명은 55년 19전 왕정을 무너뜨린 국민혁명으로서 어두웠던 하 시대를 청산하는 마침표가 아니라 밝고 희망찬 새 역사창조의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시켜야 할 숙제가 남아있음을 명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