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심은 모욕감을 불러오게 한다. 그리고 한번 불러들인 모멸감은 사라지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모락모락 자랄 뿐이다. 그러므로 시기심이 오래가면 갈수록 언젠가는 복수하고 말겠다는 갈증만 키워가게 된다. 그러니 시기하는 사람이 시기대상의 불행을 보면 자신의 시기심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대부분 시기대상에게 해를 입힐 목적으로 직접 행동을 취하게 된다. 그러면 시기심으로 인해 복수 행각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시기의 대상이 부당하다고 여겨지면 시기심은 미친 듯이 날뛰며 어떠한 것도 이를 잠재우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를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자신의 불행에 책임이 있다고 여겨버리면 자신이 공격당했다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지 대항하려는 복수심만 키워가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는 자기능력의 가능성에 따라 직접 복수에 나서기도 하고, 시기대상이 병에 걸리거나 커다란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등 복수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된다. 이렇듯 시기하는 사람은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모욕감을 이겨내려고 끊임없이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방법에 골몰하게 된다. 그런데 상상으로만 하는 복수는 상대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상상과 행위의 경계가 무너져버리면 상대를 해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처럼 시기심에서 비롯된 분노와 증오의 적대감은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라 어느 기간 동안 집요하게 준비된 것이다. 그러므로 시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피해보상’이라는 정당성이 이미 보장된 정신 상태이다. 그러니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시기대상에게 해를 입히거나 심지어 무자비하게 제거해버리는 계획적인 보복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시기심은 시기의 대상에 대한 열등의식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사실은 상대가 자신보다 더 우월하다는 현실적 진실 때문에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따라서 시기하는 사람의 격렬한 복수심은 상대로부터 입었던 상처만큼 상대에게 공평하게 되돌려 갚아주어야 한다는 강렬한 저항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니 복수를 하면서 부당함에 대한 보복이라는 변명으로 정당성을 포장하지만 사실은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내면의식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삶에 서로 뒤엉키기 쉬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복수 행위가 대부분 가해진다는 데 있다. 이런 비극을 예방하려고 사람들은 복수는 신만이 할 수 있는 초월적 영역으로 규정해왔으며 현대사회는 정의구현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국가가 보복의 권한을 독차지함으로써 완벽하지는 않지만 복수심을 잠재우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이처럼 독점적인 공권력의 힘과 신의 준엄한 심판이라는 예시가 사람들의 지나친 시기심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가족이나 친척의 복수를 직접 감행하도록 방치하는 잔인한 세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만불손한 신의 정의와 불완전하고 오류투성이인 사회정의를 앞세워 고상하게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는 것을 정당화시켜주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언론의 보도를 통해 법을 위반한 행위가 처벌받지 않고 있으면 준법자들의 시기심이 불러들인 격렬한 복수심에 따른 집단 처벌행위나 개인 스스로 나서서 폭력행위로 단죄를 자행하는 경우들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면 자연히 공권력이 법질서를 세우기 위해 공평한 법집행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법적 처벌이 가해지게 된다. 이렇게 이루어진 법적인 처벌은 사람들에게 범법에 대한 부러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범법행위에 대한 준법자들의 시기심에서 비롯된 격렬한 복수심을 진정시켜주는 이중 기능을 충족시켜준다. 그렇다 할지라도 불완전한 인간이 온전한 자신을 만들려는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시기심이 완전히 소멸되어 사라지는 세상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며, 제아무리 인간적인 형벌의 법을 만들려고 해도 다양한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무수한 시기심을 다 아우르는 법을 만들기란 금세 한계에 부딪치는 결과를 초래할 뿐 완벽한 형법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인간의 복수 욕구는 영원히 진정되지 못할 과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기와 질투로 인한 보복심이 일어나면 이를 통제하고 자제할 선택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권리임을 자각한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의 내면은 자기 자신만이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신성한 권한을 지혜롭게 실행할 수 있는 성숙한 삶을 우리 무두 함께 살아보자. 남에게 원한을 살만큼 자신만을 보호하려는 이기적 현실에 매몰되어 상대로 하여금 모멸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 여유로움을 지닌 사회생활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