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안중근 장군 서거 105주년 기념일
김 철 수 아동문학가·美솔로몬대학교한국학장
작성 : 2015년 03월 29일(일) 17:35 가+가-
지난 3월26일은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0년 3월26일 서거한 우리민족 불멸의 영웅인 안중근 장군의 서거 105주년을 맞는 날이다. 안중근 장군은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30분경 쌀쌀한 초겨울의 찬 공기를 가르며 중국 땅 하얼빈 역사에서 우리나라 침략의 원흉이자 일본제국주의의 정객인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시킨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다. 장군이 쏜 7발의 총탄중 3발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명중되어 현장에서 절명케 했고 나머지 4발은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인 가와카미토시하코의 오른팔에 한 발, 그리고 일본 궁내대신 이토의 수행비서관이었던 모리야스지로의 왼쪽 허리에 한 발과 관절에 두 발, 나머지 한 발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총재 나카무라제코의 외투를 뚫고 오른편 바지에 작열했다. 안중근 장군의 사격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옆구리, 그리고 복부를 관통시킴으로 민족의 원수를 일격에 쓰러트렸던 것이다.
안중근 장군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 그에게 역사의 심판을 내려야 했던 이유에 대해 15가지 죄악으로 명확하게 발표했는데 1),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한국의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3), 을사보호 5조약과 정미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4), 독립을 요구하는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아 통감정치 체제로 바꾼 죄 6), 철도, 광산, 산림과 농지를 강제로 빼앗은 죄 7), 일본이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여 한국의 경제를 교란한 죄 8), 한국군대를 해산 시킨 죄 9), 민족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들의 외국유학을 금지시키고 식민지화한 죄 11), 한국사를 말살하고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운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 14), 대륙침략으로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15), 일본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 등이었다.
당시 국제법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재판을 받아야하는데 일본과 한국과의 을사조약에 의해 재외 한국인의 재판권은 일본에 있다는 얼토당토 않는 이유를 들어 안중근 장군을 재판하여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안중근 장군은 법정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은 살인을 한 것이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적과의 싸움에서 적장을 사살한 것이니 국제법에 의한 대우를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사법권마저 박탁당한 대한제국과 주권을 상실한 우리 국민들은 일방적으로 일본에게 유리한 재판결과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 재판이 국제법을 무시한 부당한 재판이었기 때문에 공소할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이를 포기했던 것이다. 안중근 장군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께서 죽음을 앞에 둔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이렇다.
“내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이마도 이 편지는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것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안중근 장군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는 손수 아들의 수의를 만들어 보내며 아들에게 떳떳하게 죽으라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안중근 장군은 사형이 확정된 후에도 안정을 되찾고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는데 이 내용은 오늘날의 유럽연합보다 100년이나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평화를 갈구하는 동양인의 정신을 담은 명저중의 명저로 꼽힌다. 안중근 장군은 1910년 3월26일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서 보내주신 수의를 입은 채 31세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했는데 그가 남긴 유언내용이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편집팀 기사 더보기

tdh1234@naver.com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