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가 낳은 카인과 아벨은 인간이라는 종의 첫 세대다.
농부인 카인은 들판에서 수확한 곡식들을 제물로 바치고, 양치기인 아벨은 양을 쳐서 처음으로 태어난 양 새끼들과 기름을 제물로 바쳤다.
그런데 주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흐뭇하게 여겼지만 카인과 그의 제물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냉대를 받은 카인은 화가 났으며 수치심, 분노, 시기심을 느꼈다.
그래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 카인은 동생 아벨을 들판으로 나오게 하여 죽여 버린다. 하지만 성서에는 카인이 냉대를 받을 만큼 나쁜 짓을 했다는 내용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신만이 아는 죄를 카인이 범했을 것이라는 추측, 두 형제가 신의 총애를 받기위해 경쟁했을 거라는 상상은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카인은 신의 의도를 절대적인 정의로 보지 않고 불평등한 대우로 간주 했고, 아벨을 죽이는 폭력으로 부당한 대우에 이의를 제기했다.
아벨이 불공평을 조장한 것은 아니지만 카인이 그를 살해한 것은 간접적으로 신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카인은 신의 절대적인 정의에 무조건 믿고 복종하는 게 아니라 거역했다.
그런데 원래는 경쟁관계가 존재하지 않았음은 틀림이 없으며, 신이 두 사람을 불평등하게 대함으로써 비로소 시기심에서 비롯된 경쟁심이 유발했음은 확실해 보인다. 이로써 성경은 어떤 조건에서의 성공이 가치가 있는지, 누가, 왜,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주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정당성과는 무관하게 인간의 삶에는 늘 불공평함이 근본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인간성으로 이를 극복해만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신은 “너에게 천벌을 내려 너는 경작지로부터 추방되리라. 네 땅은 내손으로 죽인 동생의 피를 받았느니, 앞으로 네가 땅을 경작하더라도 더 이상 수확은 없을 것이다. 너는 휴식과 평온함을 누리지 못한 채 지상에서 살게 되리라”함으로써 카인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 카인의 행동자체가 특정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러나 자제력이 부족한 탓에 단순한 동기로 동생을 살해한 카인은 자신이 저지른 폭력의 결과로부터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소중한 것을 배웠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선한일은 악한일로부터 생겨난다는 사실을 통해 인간성의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은 욕망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느냐에 달려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신으로부터 인정받은 아벨처럼 불평할 이유가 없는 사람은 자제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겠지만 신으로부터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던 카인은 자제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만약 기존의 불평등을 신이 정한 것이라고 무조건 수용한다면 인간의 운명에 대한 책임은 완전히 신이 져야한다.
그러면 모든 인간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질 이유가 없으므로 무기력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함에도 중세에는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은 신이 정해준다고 믿었으며,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은 신만이 가질 수 있는 권한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을 탐하거나 시기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으려는 오만불손한 짓이며, 신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자는 세상의 질서를 전복하려는 속셈의 유혹에 빠진 자로서 영혼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니 신이 원하는 본성을 거역하여 시기하고 오만불손하게 행동하는 것은 지독하게 멍청한 바보인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일단 시기심이 일어나면 음모가 완성되기까지 밤낮으로 불안하고 고민거리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으니 시기심은 자신을 갉고 씹어서 스스로를 삼켜버리게 된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가 있어 정당화가 이루어지면 불평등을 수용할 수 있고 이의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진정으로 시기와 질투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한창 젊었을 때도 자애롭고 지혜로운 포근한 노인과 같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는 늘 연약한 노인이 아니었으며, 최선을 다하는 신조 있는 참 자유인이었다.
이처럼 현자는 자주 논쟁은 했지만 황금을 탐하지 않았기에 부패하고 불행한 삶을 살지 않았으며, 척을 사는 인생을 살지 않았기에 시기와 악평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며, 사랑이 풍부했기에 자신을 인간으로 느꼈고, 인간적인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떤 행위도 낯설지 않았고, 악한 인간이자 선한 아이였던 자로서 바로 그 자체가 순수한 평화와 자비였다.
최 수 호
현대행동심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