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상 분석의 하나로 신문이 지면에 할애하는 특집기사나 광고를 보면서 들여다본다.
요즘 신문들은 건강, 노인, 빈부의 문제를 화두로 삼는다. 한때는 역술인들의 광고가 유난이 많았다.
요즘은 한걸음 나아가 제하 모든 신문들이 ‘오늘의 운세’를 게재하고 있다.
신문이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분명하다. 사회의 현상이 불안정하거나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는 현실이다. 나의 미래를 예견하여 줄 수 있는 곳이라면 귀를 세운다.
K씨는 신문별, 운세를 보노라면 자신에게 맞는 운세가 있다고 한다. 역술 자에 따른 신문을 일컫는다. ‘맞느냐고’ 묻는다. 지인의 대답은 ‘그냥 재미 삼아 보는 거지’ 라고 웃는다. 독자층은 광범위 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현상이다. 물론 일본이나 홍콩 같은 나라에서도 점술을 보는 것은 보편화된 사회다.
홍콩 정부는 정책에도 역술인이 간접적으로 참여 한다는 소문까지 있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들만의 문화로 소문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오늘의 운세가 필요한 사회는 불안정한 현상이 지배한다. 투명한 정책보다는 시시각각 바뀌는 정책들이다.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나 70년대까지도 도정된 쌀에는 드물게는 돌이 들어 있었다. 돌을 씹은 사람은 운이 없는 것으로 비유하곤 하였다. 점차 도정기계가 발달하면서 요즘은 돌을 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도정된 쌀을 신뢰한다.
쌀의 도정처럼 우리사회가 완벽하게 믿고 신뢰 하는 사회로 갈수는 없을까. 보도에 따르면 댓글 판사가 있다. 시각이 균형을 잃고 편향된 사회관을 가지고 있다. 균형이 틀어졌다는 것은 상식과 보편에서 벗어난 태도를 말한다.
신문을 읽어주는 게스트 판사출신 논객은 말한다. 판사 중 일부분이다.
어느 집단이나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돌출 자다. 제자를 추행하는 교수, 사기를 치는 목사도 있지 않느냐고 비유한다.
대단히 잘못된 태연, 옹호적 분석이다. 편향된 판사에게 재판을 받는 피고는 운이 없다고 생각 할 까. 교수에게 추행당한 학생은 재수 없어 교수를 잘못 만났다고 해야 할까. 목사에게 사기당한 사람은 재수가 없어 그렇다고 위로해야 할까.
바로 이러한 현상에서 오늘의 운세가 판을 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70년대의 쌀에 있던 돌이 완벽하게 도정에서 걸러지듯 판사, 교직자, 성직자도 쌀의 도정기가 발달되듯, 투명한 직업관이 완성되어야한다.
최근 이완구 총리후보자의 청문회. 지적을 당한 총리를 옹호하는 시각이 가관이다. 당시의 사회상이었다고 편들기 한다. 잘못된 도정기계를 옹호하는 경우다.
기계가 있을 수 있는 현상이라고 말한다면 쌀에는 계속 돌이 들어가도 된다.
그리고 오늘의 완벽한 도정기계로 발전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종편의 프로에서 한국의 10대 역술인을 찾는 프로가 있다. 시청자의 선호도가 프로를 만들게 하였고 제작PD를 바쁘게 하였을 것이다.
역술의 상당수가 허구라는 데에 결론이 맞추어 진다. 그래도 사람들은 역술을 보길 원한다. 내일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시집을 보내기위해 역술인을 찾아온 어머니에게 역술인은 말했다.
‘당신은 남편과 평생을 싸우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세상의 어떤 남자와 산다 해도 그렇게 싸울 것이다’ ‘그게 당신이라는 사람이다’.
사실 어머니는 평생토록 몹시 싸우며 살아왔다고 했다. 역술인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그 후 편한 마음을 가지고 남편에게 잘 했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이것이 역술의 효과라면 효과다. 역술의 기능은 상담의 한 영역으로 보아야 한다.
시대의 변화에 의하여 각종 상담자가 있듯 역술도 상담의 일부분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양시대에 살다보면 시시가각지혜가 필요하다. 주변인의 의견이 필요할 때도 있다. 입시를 앞둔 자녀의 상담을 위해서 입시분석가를 찾아서 과학적 분석으로 대학을 가는 현실이다. 오늘의 운세도 이런 정도의 상담의 기능과 조심스러운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의 준비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최 창 일
예능시인·한국청소년정책개발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