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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96주년을 맞아
작성 : 2015년 03월 01일(일) 15:23 가+가-

어느덧 3월(March)이다.
3월은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군신 마르스(Mars)로 바람의 달(March Wind)이라고 부르는데 봄이지만 아직 완전히 겨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발목이 잡혀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분다고 하여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이라고도 했다.
올해로 기미년 3·1 운동이 일어난 지 96년째를 맞았다.
이 거국적인 반일운동은 1919년 1월 일본의 심장부인 동경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우리나라 일본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이 되었다.
미국의 윌슨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와 파리강화회의 및 국제연맹에서 한국을 비롯한 약소민족대표의 발언권을 인정해야한다는 보도 등을 접하고 재미 동포들이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한 원조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미국정부에 제출했다는 보도를 접한 재일 유학생들이 웅변대회를 열어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결의하고 실행위원으로 최팔용, 김도연, 백관수 등 10여 명을 선출하면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던 것이다.
실행위원들은 조선청년 독립단을 급히 결성하고 ‘민족대회 소집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여 송계백을 국내로, 이광수를 중국 상해로 파견한 뒤 선언서와 청원서를 각국 대사관, 공사관 및 일본국회 등에 발송한 다음 2월8일 급기야 동경기독교청년회관에서 400여 명의 유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사건이 역사적인 2·8독립선언이다.
그러나 무자비한 일본제국주의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이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실행위원 10명 등 27명의 유학생이 체포되어 온갖 핍박을 당하게 되는데 이 때 국내로 들어온 유학생들이 각기 자기고향에 내려가 독립운동을 펼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켜 마침내 3월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민족대표 33인이 앞장 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우리민족의 집거지인 길림성 용정에서 3월13일 용정 천주교회의 종소리를 신호로 용정과 인근 여러 민족학교의 교사들과 학생들, 그리고 수많은 군중들 3만여 명이 사방팔방에서 구름처럼 회의장소로 몰려들기 시작해 김영학회장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함께 류혜균, 배형식, 황지영 등 애국지사들에 의해서 일제에 대한 죄상이 폭로되면서 성토로 이어졌고 곧 이어 명동중학교 학생들을 위주로 구성된 충열대를 시위대가 일본총영사관을 향해 행진했다.
그러자 중국 군벌부대와 일본경찰의 무자비한 총격으로 현장에서 17명이 죽고 4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94명이 체포되었는데 3월17일 다시 3천여 명의 군중들이 모여 합성리 공동묘지에서희생자에 대한 장례식을 거행했다.
3월13일부터 4월6일까지 중국의 만주지역에서는 수백명 혹은 수천 명씩 모여 계속 항일운동을 펼쳐 여기에 참가한 동포의 숫자가 8만6600여 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3·13 반일시위운동을 계기로 무장투쟁이 시작되었고 그 후 ‘15만원 탈취사건’과 ‘봉오동전투’에 이어 ‘청산리대첩’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일제침략자들의 기세를 꺾어 놓음으로서 우리민족의 항일운동이 더욱 힘차게 지속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봉오동 일대에서는 최명록이 자위단을 조직하고 단장을 맡은 뒤 무기를 사들인 후 후일 대한군무도독부를 세웠고 왕청에서는 그해 10월 대한정의단 및 그 산하의 무장조직인 대한군정서를 토대로 북로군정서가 세워져 총재에 서일, 사령관에는 김좌진 장군이 맡아 160여 명의 정예군을 거느렸으며 왕청의 대갑자에서는 리범윤을 단장으로 한 무장단체 광복단이 설립되어 300여명의 대원과 소총 150정, 권총 200정을 보유하기도 했다.
이 밖에 국민회의에서도 안무를 사령관으로 400여명의 대원이 400여정의 총으로 무장하고 본격적인 독립군들의 무장투쟁이 시작되었으니 만주의 3·13 항일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중요성은 3·1만세운동 못지않음은 재론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3월이 오면 우리민족은 나라와 국가를 위해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간 수많은 순국선열을 다시 되새기며 아직도 간교함을 버리지 못한 채 미국의 핵우산 밑에서 교묘하게 국력을 신장시키고 감추어두었던 침략자의 발톱을 조금씩 들어내면서 우리 땅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우기며 과거의 역사적 잘못에 대한 뉘우침은커녕 군사력증강과 함께 패권주의를 시도하고 있는 일본의 야욕과 최근 국제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으며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추가 핵실험에 대한 협박으로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 날로 심각해가고 있는데 다시는 이 민족에게 슬픈 역사를 안겨주는 3월이어서는 안 된다.

김 철 수

아동문학가
美솔로몬대학교한국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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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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