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자막으로 7080이라는 숫자를 자주 접하게 된다.
70년대와 80년대를 일컫는다.
지나간 이야기, 구식으로 영영 사라질 줄 만 알았던 1970년대와 80년대의 노래와 영화, 그림들이 총총히 걸어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제시장을 비롯하여 신년벽두 쎄시봉이라는 영화까지 합류한다.
1970년대 무교동음악감상실을 이야기 하면 누구나 금방 쎄시봉을 떠오를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7080세대는 다소 뻔한 소재의 내용이 아닐까 우려도 된다.
그러나 빛바랜 이야기가 오히려 새로운 감동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쎄시봉, 젊은 시절의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조영남, 등 뮤지션들이 청순함과 낭만, 순수한 열정을 선보인 역사적 장소다.
쎄시봉을 통해서 가슴깊이 묻어둔 가슴 먹먹한 이야기들이 그려진다.
비오는 날 우산 속으로 뛰어든 사랑은 요즘의 사랑과는 다소 시차가 있을 법도 하다. 사랑도 헤어짐도 드라마를 통하여 너무 쉽게 훈련된 요즘.
7080년대의 사랑 법은 아픔과 애틋한 헤어짐이 요즘과는 다소 달랐다.
공중전화가 소통의 방편이었다.
공중전화위에 동전을 쌓아 놓고 보고픈 마음을 달래며 들었던 가슴 벅찬 목소리. 불뚝 거리는 갈망으로 여관 문 앞에서 머뭇거렸던 발길. 사랑은 누구에게나 힘든 시련의 과정이었다.
쎄시봉 같은 음악다방은 청춘 남녀들의 안식이었고 휴식이었다.
당시에 유행하였던 박일남의 ‘갈대의 순정’류의 서정 물씬한 가요가 요즘 다시 사랑을 받기도 한다.
명동, 회현 상가에는 LP판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음질 좋은 CD가 있지만 다소의 ‘지지 직’ 같은 소음이 곁들여진 LP세대. 깊은 맛이 있는 원형 프라스틱 판을 선호한다.
7080년대는 정치권의 폭압에 맞서는 시대였다. 잡지의 내용이 검열이 되었고 가요의 가사도 철저한 검열의 시대였다. 젊은이들은 자연히 숨 쉬는 수단으로 가사에 저항의식을 넣기도 하였다.
이즘에 나온 양희은의 ‘아침이슬’이나 김민기의 ‘친구’같은 노래는 캠퍼스의 젊음이 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잡지의 등록도 녹녹치 않았다.
기존 잡지마저도 무더기로 폐간되었다. 이에 대항하는 무크(Mook)지가 나오기도 하였다.
최근 ‘모멘툼’ ‘마나가’등이 1980년대를 회상하며 무크지의 귀환이라도 하듯 선을 보인다.
지금의 사회 각층의 지도자들이 7080년도에 대학을 다녔다.
그들은 격동의 시대를 지났다. 숨 가쁘게 빠른 템보로 시대와의 불화를 겪으며 한국발전의 동력들이었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의 전반에 걸쳐서 가장 큰 소용돌이가 7080에 이루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이 살아온 시절은 깊게 페인 주름만큼이나 추억이 진하다.
지금 세대들도 아버지 어머니들이 가파르게 살아온 고개 길. 이야기들이 궁금할 법도 하다.
7080세대는 빨강 부스의 공중전화, 삐삐, 핸드폰, 그리고 스마트폰을 두루 거친 세대다. 통신의 혁명을 체험, 실감하였다.
삐삐가 편리함의 수단으로 만족하였던 시절. 감히 상상할 수 없는 IT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만족은 만족으로 끝나지 않고 7080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돌아보게 된다.
아직 덜 개발된 종로, 부암동, 내자동, 무등산아래 둘레 길을 걸으며 즐거워한다. 등하교 길에 흔히 마주친 추억의 자장면 집을 만나면 마치 고향의 어머니 손맛쯤으로 좋아한다.
변해도 추억은 누구에게나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시절이다.
지난해 시청률을 50%로 끌어 올린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도 과거라는 추억을 되살리는 것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사례다.
7080은 7080세대만의 추억이 아니다.
오늘 우리의 문화를 만든 동력의 시절이다. 어느 나라나라나 문화의 번영기가 있다. 로마에게도 그렇고 프랑스에게도 그렇다. 대한민국의 7080은 시의 강국, IT 강국, 드라마 강국을 만든 중요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안녕하세요 7080 반갑습니다.
최창일
예능시인.한국청소년정책개발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