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초등학교 교장과의 대화다.
직업은 속일 수 없다. 차라도 한잔 하게 되면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주된 메뉴다.
요즘 교육이 균형에서 벗어나 있다는 데는 서로 공감한다. 그러나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선생님들은 교육의 부재는 가정교육에 있다 한다.
부형의 입장은 정 반대다. 학교생활의 교육이 절대적이다. 학교 교육이 잘못되고 있다. 학교 교육 부재론 까지 나온다.
더 나아가 이념의 이야기까지 나온다. 전교조 선생의 급진적인 태도가 오늘의 교육을 망쳤다고 한다.
선생의 입장에선 막말이다. 이쯤 되면 대화의 불을 꺼야할 상황에 이르고 만다.
결론은 부형이나 선생, 자신들은 끝없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내 탓보다는 네 탓이라는 것이다.
거대하고 거친 파도가 휩쓸고 가는 시대다. 개인의 존재감은 시대의 흐름 또는 몇몇 악마적 소수개인의 영향력 아래서 무기력 하여지곤 한다.
마찬가지로 시대의 추악함의 비난은 모두가 당신에게 있지 나에게는 있지 않다는 인식이 지배한다.
좀 더 올라가면 피식민지 시절 친일파, 부역자로 몰린 사람들의 변명과 강변도 그 맥락에서 나온다.
하나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모두가 시대의 잘못이라든가, 부당한 시각에 의하여 재단되어졌다고 원망한다.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온 국민과 정치하는 세력들이 달라질 것처럼 반성하였다.
내 탓이라는 분위기가 성숙되었다.
웬걸,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호 관련자나 정치하는 사람들의 시각은 네 탓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국민들 모두도 세월호 이후부터는 자각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비 내린 호수가 흔적이 없어지듯 자각현상은 자국하나 없이 적멸 되어버렸다.
아침 해가 뜨면서 이슬이 흔적이 없어지듯 수증기의 현상이 우리사회에 익숙해 가고 있다.
달은 보지 않고 가르치는 손가락만 보고 있다.
미국의 젊은 대통령으로 추앙받았던 존F. 케네디는 ‘조국이 무엇을 하여 줄 것인가 기다리니 보다는 내가 조국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말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대통령으로 남게 된다.
위기의 시대에 드러난 이념적 갈등과 네 탓, 내 탓 공방 속에 우리는 스스로는 물론, 국가가 적멸해 가고 있다.
구지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을 일으켜 세울 능력은 없지만, 그가 남긴 ‘내 탓’이라는 구호만은 일으켜 세우고 싶다.
위기의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관자도 안 된다. 소극적 태도의 자신을 통렬하게 반성하는 시간이 왔다. 반성 없는 국민은 미래가 없다.
반성 없는 일본을 바라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나의 양심은 나에게 범죄하치 말고 싸늘하여 가는 나의 가슴에 온기를 지 피울 시간이다.
방법은 오로지 ‘네 탓이오’ 하는 자각으로 아주 작은 질서부터 지키는 것이다.
교육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그토록 존경하는 성웅 이순신장군은 명령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도자다. 부모가 밥상머리에 자분자분 들려주는 이야기는 교육의 자양분이다. 지난여름 무더위에 광화문 광장을 다녀간 로마 교황은 실천하는 종교지도자였다.
공항에 내려서 아주 작은 경차로 목적지 까지 이동하는 모습은 신선한 감동이었다. ‘너나 잘 하세요’ 보다는 내가 말없이 먼저 실천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은 고민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실천의 모습이다.
테레사수녀도 손양은 목사도 실천의 성자였다. ‘내 탓입니다’.
최 창 일
시인·한국문인협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