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선생이 질문한다.
‘씨앗의 꿈은 무엇일까요?’ 아이들 제각각 대답한다.’ 꽃을 피우기 위해 서요’ ‘자신을 희생하면서 열매를 맺기 위해 서요’
두 아이의 대답은 모두가 맞은 말이다.
씨앗이 죽지 않고 꽃을 피울 수 없다.
열매도 맺을 수 없다.
성탄의 전야. 크리스마스의 사전적 의미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광의(廣義)의 뜻은 크리스는 그리스도를 뜻한다. 마스는 희생을 의미한다.
2000년전 그리스도 예수가 가시 멸류관을 쓰고 자기를 희생하기 위하여 온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어린아이의 대답처럼 예수는 희생의 종자로 이 땅에 온 것이다. 공자와 석가모니가 주장하는 삶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내려놓지 않는 배려는 없다.
인도의 간디는 실천하는 지도자로 국민에 추앙받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 교과서에 위인으로 소개되고 있다.
스스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가시멸류관도 써야한다. 겨울은 봄에게 녹아내리며 자신을 내어준다. 새싹을 틔우게 한다.
‘압록강은 흐른다’의 이미륵은 독일의 국어 교과서에 게재되는 작가다.
청년 이미륵은 학생시절 3·1 운동 때 왜경에 쫓겨 조국을 떠나게 된다.
독일로 망명, 의학공부를 하다가 동양학으로 교수가 된다. 전후 사정이 좋지 않았던 독일은 식량을 배급하기에 이른다. 이미륵은 배급표를 받아보니 한 장이 더 왔다. 당연하다는 듯이 배급담당 공무원에게 반납한다. 굼주림이 심했던 전후의 독일엔 이 같은 사실은 신문에 보도되고 독일 국민에게 신선하고 강렬한 감동을 주었다.
당시 이미륵과 같이 살았던 마을 사람들은 이미륵을 인격적으로 추앙하였다. 한사람의 정직함이 한국사람 모두에게 정직한 국민으로 영향을 미쳤다.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갔던 한국인은 이미륵의 좋은 이미지를 고스란히 받게 되었다.
몇 해 전 한국문인협회는 독일의 그레펠핑 공원 묻힌 이미륵의 묘지를 찾았다.
생전의 문학과 독일문학에 미친 문학성을 기리기도 위해서다. 묘지 뒤편에는 이미륵의 여자 친구가 묻혀있다.
생전에 이미륵의 삶을 존경한 나머지 유언으로 이미륵의 묘소 옆에 묻히기를 원했다. 이미륵 작가의 독일 생활. 존경받는 삶의 단면을 보여 준다.
한사람의 지도자가 국민 앞에 정직하면 많은 국민은 행복하여 진다.
예수는 자신이 희생하면 인류가 구원에 이른다는 소명을 예견하였다.
비록 십자가에 양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고통이 있더라도 인류를 구원할 수 만 있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방송매체가 흔치 않았던 시절엔 크리스마스 날이면 교회에선 연극공연을 하였다.
새벽이면 등불을 들고 집집을 방문하여 경배와 찬양을 부르던 추억도 있다.
눈 내리는 성탄. 화이트 크리스마스면 즐거움은 더 한다.
빨강 모자의 산타크로스 할아버지. 선물을 기다라는 아이들에게는 손꼽는 날이다. 기쁨은 마음이나 현실로 성큼 다가 올 때 느끼는 현상이다.
국민은 정치인에게 선거라는 절차를 통하여 직권을 위임한다.
직권 속에는 나를 행복하게 하여 달라는 믿음이 전재 된다. 지도자와 국민사이에 온전한 통교가 이뤄지고 인격과 인격사이에 이타적 사랑이 깊어질 때 긍정의 사회가 이루어진다.
‘내가 국민 앞에 있었나이다’ 자신 있게 나설 때 소망과 희망의 사회가 이루어진다. 내가 내려놓으면 타인이 행복하여 진다. 분열과 이념으로 얼룩진 2014년 성탄전야.
마치 이 나라가 십상시라는 중국환관의 표현에 비양거림 되어 지고, 교회는 목사의 전유물인양, 상장기업은 개인의 소유인 냥 마구잡이 경영행태로 얼룩져 있다. 잘못된 민 낮을 들여다 본다.
상장 기업은 국민의 것. 교회를 비롯한 공공기관은 우리 모두의 것. 마치 시골 마을의 우물이 공동체이듯. 지도자는 국민을 경배하고, 국민은 지도자를 경배하자.
2014년 성탄전야, 제가 당신 앞에 없었나이다.
최 창 일
시인·한국문인협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