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일부 산유국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으로 몰리는 가운데 신흥국들의 화폐가치가 연쇄적으로 폭락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충격이 크다.
그야말로 ‘블랙 튜스데이’였다. 16일(현지시간) 달러 대비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폭락했다. 하루 전 60루블이라는 댐이 무너진 후 70, 80 루블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러시아중앙은행의 전격적인 금리 인상조치는 진화가 아니라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증시도 12%나 추락했다.
이미 외신들은 러시아가 98년 겪었던 디폴트(지급불능) 사태로 향하고 있다는 진단을 쏟아내고 있다.
유가 하락으로 중동 국가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오히려 러시아가 폭탄을 안고 있던 셈이다. 고유가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을 비축한 중동국가들과 달리 러시아의 상황은 불안하기만 하다.
국민들도 동요하고 있다.
16일 러시아 최대 은행 소베르방크 지점에는 예금과 연금을 찾으려는 고객들이 줄을 이었다. 가치가 더 내리기 전에 루블화를 찾아 달러나 유로로 환전하거나 수입공산품이나 가구, 보석, 명품 등으로 바꿔 놓으려는 목적이다. 이에 이날 달러 환전액이 평소의 3~4배로 치솟았을 정도였다.
신흥국 통화 약세도 심각하다. 베네수엘라도 디폴트 위기감이 감돈다. 1년 내 디폴트에 직면할 가능성이 97%에 달한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할 정도다.
인도네시아 루피아도 16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고, 브라질 헤알도 10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터키 리라도 급락했다. 금융구조가 취약한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세계의 주식·채권·통화 시장이 출렁거리고 있다. 안전지대는 보이지 않는다. 1997~1998년 신흥국 외환위기의 데자뷔라는 우려가 잇따른다.
지난 6월 중순 배럴당 106달러였던 유가가 55달러대(뉴욕상업거래소 WTI 기준)로 떨어지는 추세가 심상치 않다.
40달러까지 갈 것이란 예측도 결코 과장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연합전선 혹은 패권경쟁이라는 음모론까지 국제사회에 그럴듯하게 퍼지면서 한 치 앞 전망이 어렵다.
유가하락이 단순히 호재가 아니라 미래불확실 요인 혹은 또 하나의 불안요소로 계속 작용하는 국면이다.
러시아가 1998년에 이어 제2의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게 되면 우리 경제와 기업들의 어려움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올해 우리나라의 러시아 수출은 지난해(111억달러)보다 4%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0.5%포인트 안팎 하향 조정되는 마당에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세계 에너지 시장의 대격변 속에 슈퍼 달러가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셰일가스 혁명에다 제조업의 부활로 팍스아메리카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달러 강세가 신흥국 경제를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점차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국부(國富)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극적인 환율전쟁은 그 과정으로 봐야 한다. 한국도 비상한 국면에 서 있다. 선제적 대응책을 가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