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끄트머리에 서있다.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그래도 끝이 다가오면 뭔가가 항상 아쉬움에 시달리면서 되돌려 받을 수 없는 세월에게 무엇을 탓하랴.
그 옛날 모성애가 강한여성인 어머니의 젖꼭지 물고 천지분간 못하는 생명을 부지하여 지금에 늙은이 반열에서 그 옛날의 추억을 더듬는 것도 한해를 보내며 아쉬워하는 것에 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청마의 해, 부드러운 바람타고 솟아오른 풀잎을 보고 힘을 얻어 새 희망에 깃발을 달았던 때가 하루전날 같은데 도심의 거리거리마다에는 찬바람 속에 세말을 알리는 요란스러움이 사춘기 새내기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한 때이다.
갓 익어 나온 이달호 월간문학 집에. 어느 시인은, 비바람 맞기를 몇해였던가/ 가랑잎 울어대길 몇해였던가/ 모든 것 내어주었더니/ 앙상한 겨울 나무홀로 되어/ 서산에 걸린 낙엽이 되었네/ 가고 오는 세월 따라 가야 하는가/ 세파에 망각되어 지팡이 벗 삼으니/ 먼데 추억들 부지런히 엮어서/ 해지기전 소반위에 올려놓으리/ 새봄 다시 온다면 예쁜 꽃씨 다시심어서/ 더 멋진 삶을 엮어 낼 텐데…! 가는 세월과 저무는 인생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는 이런 시어에 마음이 끌리는 때이기도 하다.
세월을 거부한다고 되돌릴 수 없고 생리학적으로도 사랑의 유통기간마저 지나버린 인생말년에 지 난 날에 추억을 벗 삼는 것도 삶 끄트머리에서 자기를 정리하는 기간이니 그 또한 인생낭만이 아니겠는가!
끝이 처음보다 중요함은 추억을 공유할 벗들과 함께 마지막 사회나 후손들에게 유훈(遺訓)을 남기는 지혜모음 회라도 만들어 미래후손들에게 인생교본이라도 남기는 것도 21세기 노인들의 할 일기에 끝머리 인생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한해의 끄트머리도 세초의 것보다 더 값진 것은 또 다른 새해가 다가옴에 준비의 단계이니 지난날에 허망한 일들의 탄식에 체념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기간이니 지난330여 일의 날보다는 더 값진 날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일생에 다시 만날 수 없는2014년 청 말의 해 세말을, 나는 무엇을 하고 역사적인 한해를 마무리 할 것인가에 고민해보는 것도 고등동물의 본연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12월이 들어서자 첫눈이 내리면서 삼한사온의 겨울풍미를 무색하게 하면서 우리지방이 첫추위를 폭설과 함께 연이은 한파를 겪고 있다.
지금이사 절대빈곤자나 엄동설한의 눈물겨운 세월을 보내는 자들이 없는 좋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인정과 사랑이 매 말라버린 현실에 정신적 빈곤자들에게 21세기 문화 권력의 지배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문가라는 미명아래 정신적인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린 자들을 업신여기거나 차별대우를 하는 것은 과거에 절대빈곤의 서러움보다 상처가 더 깊을 수도 있음을 알고 차가운 연말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내게 해야 할 것이다.
요즘정치중심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른바 정윤회사태도 일반 서민들은 결코 마음 편하게 강 건너 사돈네 불구경하듯 보고 있는 것 아니다.
나라가 편안해야 그렇지 않아도 이 엄동설한풍의 때에 마음 놓고 살수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헌법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해놓으시고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으며 자유의지까지를 부여 하셨다. 나라의 정책은 국민복지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정신적 이데올로기에 금이 가게해서도 안될 것이다.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오늘까지 살기를 갈망하였으며 작년에 간 사람도 금년까지 더 살고 싶었던 세상에 우리는 현재 이 땅에 살면서 처음보다 끝을 더 좋은 모양으로 장식해야 할 것이다.
끝이 없으면 또 다른 새로운 것을 기다릴 수가 없기에 끝은 처음보다 더 중요하다.
마디의 끝에 또 새로운 것이 오고, 개인의 종말에도 유전자적 새로운 것이 오기에 끝은 어떤 때를 막론하고 처음보다 귀하고 중요한 것이다.
최 규 준 수 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