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관피아’(관료+마피아, 전직 관료 관련 비리) 척결을 내세워 여러 차례 연내 처리를 압박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김영란법) 제정 논의가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인 정무위는 26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김영란법 심의를 재개할 예정이었으나, 새정치민주연합이 누리과정 예산을 문제 삼아 의사일정을 거부해 회의를 열지 못했다.
문제는 김영란법을 퇴행시키려는 움직임이 노골적이라는 것이다.
국민적 여망이 담긴 ‘원안’은 고사하고, 원안에서 대폭 후퇴한 정부수정안보다도 퇴보한 빈 껍데기 김영란법안을 당정이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비공개 당정협의에서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보고받은 김영란법 ‘검토안’은 “부정청탁금지와 이해충돌방지”라는 법의 목적을 무색하게 한다.
김영란법’의 골간은 공직자가 일체의 금품과 향응을 받지 못하게 하고, 가액이 100만원을 넘으면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불문하고 형사처벌토록 한 것이다.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한 정부수정안은 직무관련성이 없으면 형사처벌을 면제해 공직자들의 ‘부패 출구’를 널찍이 열어놨다.
권익위의 ‘검토안’은 솜방망이 정부수정안을 더욱 개악(改惡)해 외려 부정청탁을 ‘조장’하는 꼴이다. 우선 부정청탁의 개념을 완화·축소하고, 부정청탁 예외 사유를 4개에서 7개로 늘렸다.
부정청탁 처벌도 1차 부정청탁은 면해주고, 동일한 부정청탁을 반복할 때만 과태료를 물리는 식으로 후퇴했다.
부정청탁을 받은 공직자의 ‘의무 신고’도 ‘임의 신고’로 바꾸고, 이해충돌금지 부문도 완화했다. 이러한 방안이 통과된다면, 공직사회의 적폐를 도려낼 강력한 부패방지법이라는 본디 취지는 설 땅이 없어진다.
그러잖아도 솜방망이로 느슨해진 법안을 아예 빈껍데기로 만들려는 권익위와 새누리당의 태도는 여간 개탄스럽지 않다.
김영란법 원안 처리를 극구 회피하는 건 결국 그것으로 불편해질 국회의원과 공직자들이 기득과 부패 카르텔을 벗고 싶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여야는 김영란법 제정을 늦출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안 될 말이다.
김영란법 원안을 고수하자는 의견과 실천 가능하도록 조정하자는 의견은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런 이견은 법 시행 후 얼마든 수정·보완할 수 있는 문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법의 내용보다 타이밍이다.
공직사회 부패 척결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응축된 현 시점에서조차 김영란법을 제정하지 못한다면 세월호 이후를 향한 개혁의 동력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반년이 됐는데도 지금껏 절충점을 찾지 못한 여야가 한심하다.
여야는 올해 안에 김영란법을 제정한 뒤 내년 상반기 중 보완 입법을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