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이미 1990년대 일본과 유사한‘디플레이션(Deflation·물가 하락에 경기 침체가 겹치는 현상)’ 초기 단계에 진입했을 수 있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고가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한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면서 한국은행에 신속한 추가 금리 인하를 주문했다. 세계 각국에 이례적 저물가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한국에도 현실로 닥치고 있는 것이다.
KDI는 25일 내놓은 ‘일본의 1990년대 통화정책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0%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디플레이션 상황을 의미할 수 있다”면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작년 10월 0.9%까지 떨어졌으며 올해 들어 한국은행 물가목표치 하한선인 2.5%보다 크게 낮은 1%대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금융·증권업계 종사자와 교수 등 경제 전문가 3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4.7%가 내년 경제 상황의 키워드로 ‘구조적 장기침체’를 꼽았다.
만성적 수요 부족 때문에 경제 성장의 원동력인 투자와 고용이 위축되는 구조적 침체 현상이 우려된다는 진단이 내려진 것이다.
또 저성장·저금리·저소비가 일상화하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마치 과거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의 장기 저상장 구조에 우리 경제도 신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기관차 역할을 한 주요 제조업은 성장률이 크게 둔화하고 있다.
반도체, 휴대전화, 조선, 철강 등 주력 산업이 성장 활기를 잃은지 오래다.
중국의 제조업은 이제 기술력까지 더해 대부분의 우리나라 주력 산업분야를 잠식해가고 있다.
일본은 엔저로 우리 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흔히 얘기하는 샌드위치 신세에 놓인 우리 경제는 이제 더 이상 제조업 성장에만 목 맬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디플레이션이냐 아니냐의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라 당장 정책기조를 바꾸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고용률과 물가상승률 목표를 정해놓고 제로금리와 함께 무제한에 가까운 돈 풀기로 일관되게 인플레이션 정책을 밀어붙여 경제를 회생시킨 미국 중앙은행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
1992년부터 두 해 연속 물가상승률이 1%대를 보였는데도 머뭇거리다 장기 침체에 빠져버린 일본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디플레이션은 일단 진입하면 걷잡을 수 없는 침체와 불황의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으니 선제적으로 대응해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