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차기 대선전에 끌어들이려는, 때아닌 경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얼마 전 새누리당 내 친박계 의원들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그를 차기 주자 반열로 끌어올리더니 이번엔 야당이 한발 더 나갔다.
야권 원로급인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지난 3일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반 총장 측근들이 (새정치연의) 차기 후보 영입 의사를 타진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반 총장의 보좌진은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 향후 국내 정치 관련 관심을 시사하는 듯한 보도를 하지만 전혀 아는 바 없고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고 공식 입장을 전하며 ‘반기문 대망론’에 선을 긋긴 했다. 유엔 회원국과 사무국 직원들로부터 불필요한 의문이 제기되고 직무수행에도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며 여론조사를 포함한 국내정치 관련 보도 자제도 요청했다.
반 총장은 5년 임기를 한 차례 거치고 연임에 성공해 8년째 재직 중이며 2016년 말 두 번째 임기를 마친다.
그의 유엔 사무총장 등극은 짧은 기간에 눈부신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달성해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인정받은 대한민국의 위상이 반영돼 가능했다.
불편부당한 위치에서 국제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유엔 사무총장의 직분을 감안하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이렇게 국내 정치에 연계시키는 것은 결코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반 총장이 지적한 대로 국제사회는 각종 분쟁과 테러 위협, 그리고 에볼라 사태와 자연재해 등 유례없이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자국 정치권의 일방적인 구애와 흔들기, 언론의 과장 보도가 이어진다면 유엔 회원국과 사무국 안에서 불필요한 의문이 제기될 게 뻔하다.
이런 일로 흔들리다 보면 사무총장으로서 직무 수행에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될 것임은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여야가 서로 “우리편 대선 후보”라고 주장하는 진풍경을 빚어낸 것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징표일 것이다.
반 총장은 최근 차기 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여야 후보감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주권자인 국민이 어느 정파와도 초연한 위치에 있는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야의 당리당략에 따른 무한 정쟁에 신물이 난 상황을 감안할 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설사 반 총장이 퇴임 후 정치적 행보를 한다면 그건 그때 가서 논하면 될 일이다. 눈앞의 이해득실만 따지는 정치권의 단견이 어렵게 키운 국제외교 빅샷의 입지를 흔드는 우를 범하면 되겠는가.
지금은 반 총장이 국제 외교 무대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본연의 직분을 다하도록 모국의 정치권과 언론이 충심으로 도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