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이전 갈등… 文·尹 회동 ‘불투명’
집무실 갈등 양측 실무협상 결렬… 추가 일정 못잡아
尹당선인 측 “실무적 만남 추가 일정 들어온 거 없어”
작성 : 2022년 03월 22일(화) 17:36 가+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에 청와대가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하자 양측간 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청와대는 집무실 이전과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은 별개라며 조속한 회동의 필요성을 부각하고 있지만 윤 당선인 측의 미온적 태도에 좀처럼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모습이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회동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전날 있었던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의 회동을 위한 실무협의에서도 이렇다 할 접점을 찾지 못했다. 양측은 추가 실무협상 일정도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문 대통령과 당선인 간 첫 회동은 여전히 ‘안갯속’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서 진행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을 위한 실무협상의 추가 진행 상황에 대해 “실무적 만남과 관련한 구체적 추가 일정이 들어온 건 없다”고 말했다.
전날 장 비서실장과 이 수석 간 실무협상에서 양측의 팽팽한 입장만 주고받은 끝에 돌아선 이후 추가 일정도 잡지 못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집무실 이전 문제가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면서 실무 단위에서의 협상력이 줄어든 분위기를 방증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청와대는 집무실 이전과 대통령과 당선인 회동은 별개 사안이라며 회동 여건 조성을 위해 힘쓰는 분위기다. 집무실 이전 문제 역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직접 만나 협의할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 뉴스쇼’ 인터뷰에서 ‘두 분(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주중에 만날 수 있는 문제인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당연히 그렇게 돼야 되겠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노력하고 있다”는 원론적 기대감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이전 결정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으로 인해 우려되는 안보공백 해결방안을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현직 대통령의 군 통수권에 해당하는 합참의 이전이 불가피한 만큼 안보공백을 막기 위한 사전 협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정권 이양기의 ‘허니문’ 기간을 건너뛴 채 인수인계에 비협조적이라는 게 인수위 내의 대체적 인식이다. 윤 당선인 측은 집무실 이전 구상 발표 전에 관계 부처와 사전 논의를 마친 상태로 청와대가 제동을 걸고 있다는 입장이다.
김 대변인은 “현재 청와대가 통할하는 각 부처 계신 분들과 의견 조율을 사전에 진행했다”면서 “청와대에서 원하는 뜻이 무엇인지 저희에게 별도로 전달해주면 잘 숙의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용산 집무실 출근이 어려울 경우 통의동 당선인 집무실에서 5월10일 임기 첫날을 시작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선인이 아닌 대통령의 법적 권한을 넘겨받는 5월10일 0시부로 청와대를 개방하겠고 밝히는 등 감정싸움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주 문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이 전 대통령의 사면과 공공기관·공기업 인사권 행사 문제로 한 차례 충돌한 뒤 집무실 이전 구상이 발화점이 돼 양측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 회동 관례에 비춰 이미 가장 늦은 회동 사례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시간이 지날 수록 회동 성사 여건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섞인 관측도 나온다.
역대 대통령인과 당선인의 회동은 최장 9일 만에 성사됐다.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9일 만인 12월28일 이명박 당시 당선인과 만찬을 겸해 만났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선 9일 만인 12월28일 박근혜 당시 당선인과 청와대에서 회동한 바 있다.
그 외에는 짧으면 이틀 길면 나흘 정도가 걸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당시 당선인과 대선 4일 만인 2002년 12월23일 만났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당시 당선인과 대선 2일 만인 1997년 12월20일 만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당시 당선인과 대선 3일 만인 1992년 12월21일 회동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