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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행방불명자 찾는다’ 옛 광주교도소 암매장 발굴 시작
확인 못한 배관 발견돼 잠시 중단되기도
발굴 작업 실무 대한문화재연구원 총괄
작성 : 2017년 11월 06일(월) 18:11 가+가-
옛 광주교도소 부지 내 5·18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들의 유해를 찾기 발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5·18 당시 3공수여단과 20사단 병력들이 주둔했던 옛 광주교도소 내 암매장 발굴은 80년 5월 이후 37년 만에 처음이다.
5·18기념재단은 6일 오전 8시부터 옛 광주교도소 부지 내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암매장 추정 장소에 대한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문화재 출토 방식을 작업에 활용, 작읍 삽 등을 사용해 조심스럽게 흙을 파내고 있다. 유해로 의심되는 물체가 나오면 흙을 체로 걸러내 눈으로 우선 확인한다.
발굴 작업의 실무는 민간단체인 대한문화재연구원이 사실상 총괄하고 있다.
조현종(전 국립광주박물관장)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연구소장과 최인선 순천대 교수가 자문을 맡고 있다. 조 소장은 지난 1992년 광주 신창동 유적을 발굴하는 등 국립박물관에서 30년 이상 근무했다. 최 교수는 함평 민간인학살 관련 발굴 작업을 전담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발굴 작업은 2시간여만인 오전 10시께부터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애초 파악하지 못한 배관이 암매장 발굴 과정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기념재단은 발굴 작업에 앞서 법무부를 통해 암매장 추정 장소 주변에 1999년과 2003년 두 차례 도시가스 배관이 매설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매설된 가스 배관을 피해 발굴 작업을 진행했는데, 확인하지 못한 배관이 발견된 것이다.
작업자들은 추가로 발견된 배관을 피해 오전 11시30분 현재 작업을 다시 진행하고 있다. 기념재단은 법무부와 광주교도소 측에 배관의 용도와 설치 시기를 확인할 수 있도록 시설 변경 자료 등을 요청했다.
암매장 발굴 조사가 이뤄질 교도소 북측(담양 방면) 담장 바깥쪽은 1980년 5월 당시 공수부대의 순찰로 인근 땅으로, 일부는 농장으로 사용했고 3공수여단 16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3공수여단 본대대장이었던 김모 소령은 1995년 5월29일 서울지검 조사 당시 이 곳에 “12구의 시신을 부하들과 암매장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암매장한 장소의 약도까지 남겼다.
‘관을 사용하지 않았고 가마니로 시신 2구씩 덮고 묻었다’고도 진술했다. 최소 6개의 구덩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5·18기념재단은 테니스장 인근부터 교도경비대 관사 앞까지 폭 3~5m, 길이 117m 가량의 땅 속에 행방불명자들의 시신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5m, 최소 2m 가량을 파내면 유해가 있는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작업 시작 뒤 15일 정도면 유해 또는 구덩이가 있는지 확인되고, 만약 유해가 있다면 한 달 뒤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해 흔적이 발견되면 발굴 작업은 광주지검의 지휘를 받는다.
기념재단은 광주지검과 유해 발굴 이후 수습 방법과 신원 확인 주체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기념재단은 유전자 검사 등 신원 확인을 전남대법의학교실이 맡을 수 있도록 검찰에 협조를 요청했다.반면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 5·18 직후 교도소 관사 뒤에서는 시신 8구, 교도소 앞 야산에서는 시신 3구가 암매장 상태로 발견됐다.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80년 5월31일 ‘광주사태 진상 조사’ 문건에는 이른바 ‘교도소 습격 사건’으로 민간인 27명(보안대 자료 28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단순계산으로도 16~17명의 신원과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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