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때 광주에 코브라헬기 AH-1J 2대, 경공격형헬기 500MD 22대, 수송헬기 UH-1H 11대가 투입됐다는 육군 1항공여단의 상황일지가 공개됐다.
상황일지에는 광주시민 다수가 헬기사격을 목격했던 1980년 5월21일, 기관총으로 추정되는 화기를 장착한 500MD 헬기 7개, 코브라헬기 2대가 광주에 출동한 사실이 적혀있다.
24일 5·18연구소가 공개한 육군 1항공여단 상황일지에는 1980년 5월18일부터 5월30일까지 날짜별 상황과 조치 내용 등이 적혀 있다.
상황일지는 지난 2005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에 제출된 것으로 기록됐다.
상황일지 앞에는 ‘육군 1항공여단 작전 지원 내용’이 요약돼 있다.
‘작전 지원 내용’에 따르면 1항공여단은 1980년 5월14일부터 5월30일까지 광주와 전남 등 17개 지역에서 31항공단과 61항공단의 코브라헬기 AH-1J 2대, 경공격형헬기 500MD 22대, 수송헬기 UH-1H 11대, 군인 108명을 충정 작전에 투입했다.
이 기간 운항된 항공기 대수는 230대, 비행시간은 827시간이었으며 전투병력 2910명, 보급품 187t을 실어 날랐다.
군은 ‘무력시위, 지휘 정찰, 특수 작전, 공중 방송, 깨스(가스) 및 전달 살포 등의 다양한 항공 작전으로 지상 부대 도로 차단의 제한 사항을 극복하고 작전의 속도를 촉진, 광주사태의 조기 수습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보고했다.
날짜별 상황일지에서 항공기 출동 준비 지시가 처음 내려진 것은 5월18일 오전 9시42분으로 기록돼 있다. 61항공단에 10분 내 6대, 30분 내 14대가 즉각 출동할 수 있도록 대기시켰다.
다음날인 19일 오후 4시20분에는 31항공단에 M-5를 실은 500MD 헬기 2대의 출동 대기를 지시했다.
500MD 헬기가 광주로 투입된 것은 5월21일이었다.
당일 오전 5시10분께 M-5를 창작한 502항공대 소속 500MD 5대가 광주로 출발, 오전 6시25분 도착한 것으로 기록됐다.
5·18 당시 ‘캘리버 30’ 기관총을 장착한 500MD 헬기가 광주로 투입됐다는 506항공대 소속 부대원들의 잇단 증언이, 공식 기록으로 확인됐다.
같은 날 오전 11시15분에는 수송헬기 UH-1H 10대가 광주로 출발, 오후 1시10분께 도착했다.
UH-1H 헬기는 500MD와 달리 헬기 양편에 M60 기관총을 사격할 수 있는 거치대를 설치할 수 있는 기종이다.
전일빌딩 10층의 총탄 흔적을 분석,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37년만에 공식화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공식 보고서를 통해 ‘탄흔의 크기로만 보아서는 M16 소총의 가능성을 우선 추정할 수 있다. 다만 UH-1H 헬기의 양쪽 문에 거치된 M60 기관총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광주에 도착한 헬기 중 일부는 곧바로 항공 작전에 나섰다.
오후 2시20분께 헬기 2대가 임무수행을 완료한 것으로, 오후 2시34분부터 오후 3시10분까지 또 다른 헬기가 임무를 수행 중이었던 것으로 기록됐다. 구체적인 임무가 무엇인지는 기록돼 있지 않았다.
다만, 헬기 도착 시간과 임무 수행 중이었던 기록을 종합하면 ‘21일 오후 1∼3시 사이 호남동성당 등 금남로 주변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5·18 직후 조비오 신부, 미국인 목사 피터슨씨, 수십 명에 달하는 목격자 등의 진술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날 오후 3시57분께 31항공단 소속 506항공대의 500MD 2대도 출동 지시를 받고 광주에 투입된다.
다음날인 22일에는 오전 2시15분께 코브라헬기 2대가 광주에 도착, 이후 작전에 투입됐다.
5·18 당시 육군 1 항공여단 31항공단 103 항공대대장으로 근무했던 이모(당시 39세)씨는 지난 1995년 5월15일 서울지방검찰청 926호 검사실에서 “전교사 작전 통제를 받았고 김순현 장군으로부터 5월22일 광주천을 따라 위협사격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군의 코브라헬기 투입 기록과 사격 명령이 내려진 증언의 시점이 일치한다.
5·18연구소 김희송 연구교수는 “헬기 관련 군 마지막 자료로 추정된다. 다만 군 자료에는 100% 진실이 담겼다고 볼 수 없다”라며 “자신들이 유리한 자료만 과거사위에 공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실제 육군 본부와 예하부대에서 보고한 내용에 장비와 병력의 숫자 차이가 있다”며 “또 임무 수행 완료라고만 기재돼 있을 뿐 어떤 임무인지는 적혀 있지 않다. 과거사위에 제출한 자료의 원본이 따로 있는지 등을 더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효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