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장업을 하는 이사장이 TV의 뉴우스 시청을 한다.
'왜 정치인들은 국민과 여론을 저렇게도 모를 까요' 듣던 친구가 대답한다.
'저렇게 예쁜 여자 배우가 왜 포르노를 찍을 까요' 질문과 같다고 말한다. 조금은 엉뚱한 답이지만 정치인의 인식을 포르노에 비유하고 있다. 그만큼 작금의 현실 정치가 막장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선거 때의 정치인은 국민의 여론에 촉각을 세우고 매우 겸손하다.
정견발표는 꿈꾸는 미래가 있다. 봄날의 나무처럼 싱그롭기 그지없다.
웬걸, 당선이 되면 예쁜 여자가 작품성 있는 영화에 출연하지 않고 값싼 포르노에 출연하듯 한다. 편 가르기, 당리당략에 사로잡힌다. 계파주위에 메몰 된다. 가슴까지 풀어 헤친 포르노를 넘어 청소년이 보기에 민망한 19금 배우처럼 저속해진다. 쉽게 정치에 접근하여 보자.
문학은 마음에 향기를 담는다. 정치는 국민의 가슴에 향기를 넣어준다.
문학은 청자연적이다. 정치는 국민을 청조한 대 자연으로 걸어가게 하는 안내자다. 문학은 심오한 인문학으로 마음에 교양을 넣는다.
정치는 국민의 가게를 살찌우고 해외에 나간 자국민이 내 나라를 자랑하게 한다. 문학이 마음의 산책이다. 정치는 현실의 삶이다. 아뿔사 정치를 이렇게 고상하게 문학과 대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이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이디오피에서 온 커피가 있다.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수만리를 날아 왔다. 어느 바리스타에 의하여 뜨거운 불에 브랜딩 된다. 그리고 손님에게 한 잔의 커피로 태어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커피는 사람들의 가슴에 향기로 남는다. 커피가 사랑받는 것은 마시기도 전에 향기가 전해오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커피처럼 우리의 가슴을 울려 주어야 할 선량이다. 정치인의 우리의 지근거리에서 살고 있다. 늘 걱정스러운 뉴우스만 유권자에게 전한다. 어느 정치인은 강진에 가서 다산 정약용선생만 이야기한다. 우스운 것은 여의도에 많은 정치인은 놔두고 강진의 수도하는 분을 다시 올라 오게하여야 한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에는 국민들은 지금은 국회에 입성한 안철수의원을 하루아침에 대권의 반열에 올린다. 이것은 현역 정치인들의 비웃는 국민들의 근엄한 제스처였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부끄럼을 모른다. 모르는 것이 불행의 연속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남긴 전직 국회의장 나리는 골프장에서 자신이 남긴 말을 실천하다가 법률적 제제를 받기도 했다.
정치인들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코매디 대사와 같다. 메르스 유행병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정치인들은 그것을 놓고도 정쟁이다. 정말 국민이 불쌍하다. 정부당국에만 의존하지 말고 개인이 스스로 유의해야 한다는 방송 페널이 한심하다. 어느 시민이 스스로 조심하지 않겠나. 정부의 몫이 있고 개인의 조심이 따로 있다. 정부의 편들기 페널이 가증스럽다. 아마도 무슨 자리를 생각하는 페널 이거나 분명 좋지 못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좋지 못한 원인은 상상에 맞기고 싶다. 정치인의 모습은 교통사고 난 아버지의 보험 보상금을 놓고 자식들이 서로 나누어 가지겠다는 꼴사나운 모양새다.
무엇이든 정권의 유, 불리에 심지가 맞추어 있다.
마치 새벽 승냥이와 같은 동물의 모습이다. 약한 토끼나 작은 다람쥐를 헤치는 태도다.
선풍기의 계절이 왔다. 20년이 넘은 선풍기를 꺼낸다. 스위치를 누르니 작년에 주었던 바람을 다시 시원하게 내 준다.
20년 전 아들놈 태어날 때 구입한 선풍기는 아무 말 없이 여름이면 헌신을 한다. 몇 시간이 지나도 날개 죽지가 아프다는 말이 없다.
선풍기 같은 정치를 할 수 없을까. 조건 없이 바람을 줄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