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 산돼지 등을 남긴 한국표현주의 희곡의 선구자이자 연인 윤심덕의 가슴 아픈 사랑으로 현해탄에 몸을 던진 김우진. 그는 왜 극단의 선택을 하였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엉 바위에서 왜 몸을 던졌을까. 유서대필 조작사건으로 30여년 만에 무죄선고를 받은 강기훈은 왜 암에 걸렸으며 투병중일까.
5.18행사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왜 정부는 못 부르게 할까.
직설적인 답이다. 정부의 불친절함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저마다의 국민 생각을 모두 헤아린다는 것은 정부로서 가당치 않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의 오랜 정서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5.18 광주사태의 피맺힌 행사에서 부르고자 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은 어느 날 불러진 노래가 아니다. '80년대의 시위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불러진 노래다. 5.18행사에 가장 적합한 노래라고 언론은 물론 국민들의 생각이다. 국회에서도 여야가 제창하기로 결의 하였다.
정부의 포용하지 못하는 태도에 국민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정부의 반대는 보수 단체의 의견을 중요시 하는 것일까. 쉽사리 납득 할 수 없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한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자기들 끼리 끼룩 끼룩거리면서/자기들 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 우리들 끼리/ 낄낄대면서/ 우리들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기 자기 자리 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의 전문이다. 화자는 현실을 긍정 적으로 보지 않는 구절이다. 새들이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날아가는 모습은 애국가에 따라 모두 일어나는 획일 적인 현실에 대한 부정이며 냉소라 할 수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는 현실에 대한 화자의 부정적 태도, 냉소가 드러나는 시라고 보여 진다. 화자는 현실을 보며 '이게 아니다' 라고 부정 하는 확실하다. 그렇게 현실을 차갑게 비웃고 있는 것도 확실 하다. 물론 이 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
다만 새를 통하여 부정하고 냉소하는 화자를 만날 수 있다.
자조(自嘲)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비웃는 다는 말이다. 내 인생은 쓰레기 같은 인생이라고 말한다면 스스로 비하하고 조롱하는 태도다. 세상에서 자조하는 지경에 이르면 우울이라는 병에 이르게 된다. 모두에 표현한 극작가 김우진, 노무현 전 대통령, 대필조작의 강기훈도 자조에서 오는 불행이다.
국민이 자조에 이르는 길은 정부의 불친절이다. 불친절이라는 것은 당연하게 친절을 베풀어야 할 태도에 이르지 못하는 잘못 된 것을 의미한다.
정치의 끝은 친절이다. 민주주의 끝은 경청과 합일이다. 합일은 서로의 의견의 일치를 말한다.
어느 소경이 거리에서 구걸을 한다. 앞에는 팻말이 놓여 있다. '나는 맹인이며 앞을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힐끔 쳐다보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보다 못한 시인이 팻말을 뒤집고 뒤쪽에 문구를 다시 써주고 간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두가 맹인에게 동전을 넣어주고 간다. 맹인은 너무 궁금하여 사람을 붙들고 묻는다. 무슨 말로 팻말이 바꾸어 졌느냐고.
'아름다운 날입니다. 나는 아름다운 날을 보지 못하는 맹인입니다.
맹인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같은 말을 표현하여도 보는 사람의 감정은 다르다. 감정에 대응하는 태도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보는 정부의 태도는 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입니다.라는 문구를 보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