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성인의 도움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연약한 포유류로 태어난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아기의 부모나 양육자의 태도에 따른 영향력은 절대적이며, 유아기의 의존관계에서 아이가 습득한 경험의 내용에 따라 많은 ‘다름’을 형성하여 지니게 된다. 특히 어머니가 다양한 자극이나 환경을 조성하는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화해주면 지능계발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되고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양육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율성과 독립성보다는 처벌중심의 교육으로 통제와 규율로 양육하면 유아기에 깊은 내면에 장점이나 칭찬보다는 단점이나 비판을 먼저 생각하는 부정적인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 이처럼 아동기의 경험은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이렇듯이 우리는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경험들로 인해 ‘다름’을 형성하여 지니게 된다. 그런데 만3세에서 6세까지는 아이들이 성장하여 기본적인 신체와 정서발달이 완성되어 부모나 양육자가 돌보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탐색행동을 하게 된다. 세상의 주인공처럼 스스로 이동성을 강화하고 주도적으로 기본적인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하게 된다. 따라서 부모나 양육자의 통제나 지시를 무조건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과 판단에 따라 자신의 주장을 펼쳐보이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의 주장은 성인의 입장에서 보면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어서 엉뚱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많은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적절한 대응 방식과 새로운 적응방법의 기능을 학습하게 된다. 그런데 성인의 입장에서 보기에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이라고 여겨서 아이들의 주장을 무시하거나 강하게 짓눌러버리면 부모의 눈치나 살피는 수동적인 부적응패턴을 학습하게 된다. 아이들의 독립성과 주도성을 학습하려는 의지에 과도하게 처벌과 통제로 대해버리면 강한 죄책감을 내재화하게 되어 반항적인 행동유형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인이 되어서도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성향 때문에 차마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지도 못하고 자신에 대한 비난만으로 자신만의 아픔을 달래는 안타가운 삶을 살게 된다. 이처럼 아동기의 체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한다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런 경험으로 내재화된 자신을 깨닫게 된다면 자신만의 아픔에 서러워해하지만 말고 가슴속 깊은 곳에 간직한 자신의 한을 털어내고 홀가분해하는 기회를 가져보아야 한다. 이렇듯 사람들의 다름이란 아동기에 부모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며, 이렇게 잘못 형성된 성격은 성인이 되어서도 교정되지 않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부적응을 유발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따라서 타인과의 원만한 공존관계를 이루어내려면 서로의 성장환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무척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는 항상 자신에게 노출되어 있는 환경의 영향에 따라 개별적으로 다양한 ‘다름’을 형성해 간다. 이처럼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게 모르게 자기 나름대로 생존방식을 익혀왔으며 이러한 자기식 문제해결방식들과 어우러져 형성된 성격을 기반으로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당면한 상황에 대응하고 처리하는 방식이 건전하고 옳은 것인지 되짚어보고 검증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하기보다는 눈앞에 닥친 현실에 급급했을 뿐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단순히 길러지는 나를 넘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자신만의 경험을 축적하면서 자기 인생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해가는 자아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똑같은 30∼40대를 경험했다 해도 동일한 환경을 경험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대한민국 근대발전사에서처럼 한번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여기며 맡은바 사명에 충실하게 살아오면서 경제계발시대를 경험한 아버지 세대들과 “삼팔선”이니 “이태백”이니 하는 용어에 익숙하고 직장보다는 개인생활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요즈음 젊은이들과는 서로 삶의 태도가 분명히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만한 사회생활을 영위하려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슬기로움을 보이는 일상생활을 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