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도록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받은 것처럼 그 책무를 다하는 세상을 살아가려고 한다. 그
리고 그 알량한 믿음을 우리 모두가 반드시 실현해내야 할 최소한의 정의로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세상이 얼마나 난장판인지 깨닫게 해주겠다며 똑바른 세상을 지켜내려는 최소한의 정의가 외면당하는 절망과 고통의 증거들을 줄줄이 나열하곤 한다.
그리곤 사회적 규범인 도덕, 윤리, 법을 앞세워 사회정의가 어떤 것인지 본 떼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열을 올리면서 세상이 아픈 만큼 그들도 아프게 해주어야한다고 목청을 높여 흥분한다.
이러는 순간만은 그 현장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의로움을 지켜내려는 정의의 사도가 된다.
이처럼 실제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불량한 사람은 아니 보이고 저마다 정의롭게 살겠다며 아우성치는 사람들만이 득실거리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그러면 동기마저 불분명한 질책이 불특정 다수에게 난무하게 되고, 정의의 보도(寶刀)를 휘둘러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범죄가 날뛰는 아수라장인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흉측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예외 없이 사회정의타령을 통한 자기 위안에 안주하는 어리석은 짓은 지속될 것이며, 이 세상은 남의 고통에 둔감하고 죄책감이 없다고 진단하는 그 잘난 허상의 정의를 내세워 세상이란 어떻게 돌아가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최소한의 정의에 대한 착각만 더욱 강화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정의에 따라 마음의 위안을 얻는 뭔가의 논리를 지속적으로 생성해냄으로써 집단자위에 빠져들게 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불러들이는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을 자신만은 알고 있다는 환상에 기대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그러니 자위하는 데는 사회적 모순을 잘 모르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은 절대 금기 사항이다.
오직 사회적 병폐를 알고 치유할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믿음만 성립하면 된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는 전적으로 선량한 피해자”일 뿐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착한 우리와 전혀 다른 괴짜 하나를 탄생시켜 대비시키기만 하면 그만이다.
사회정의구현을 위해 그 괴짜만 제거하면 될 거라는 또 하나의 착각만 완성되면 자기 위안에는 문제가 없다.
자기 위안은 우리 모두가 저주할 대상만 만들어내서 비정상인 그를 탓하는 데 공감만 이루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위안이나 집단위안을 하는 데는 뭔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의 결과를 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최소한의 정의에 따른 자기위안은 당면한 문제에 접근하려는 진정성은 자연히 실종되고, 진지한 자아성찰을 멈추게 하는 자기기만에 스스럼없이 빠져들게 하고 만다.
따라서 자기는 괴짜가 아니며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수작에 뻔뻔스럽게도 동참한다.
그리곤 우리 모두는 어려움이 닥치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본색을 또 다시 드러내고 만다.
그러니 도덕과 윤리, 사회적 규범과 법은 모두 위선일 뿐이라며 이를 증명해 주겠다면서 정의 담들을 늘어놓는 짓을 반복하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만은 언제나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경계를 초연하게 넘나드는 정의로운 존재로서 세상을 성토하는 자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최소한의 정의에 대한 적개심을 배설해 낼 수만 있다면 피상적이지만 정형화된 편견을 조건 없이 받아들여서 인간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자극하기를 좋아한다.
따라서 선의 편에 서 있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악의 유혹 앞에 무너지는 연약한 존재에 대한 죄 값을 물을 수 있으면 최소한의 정의는 성립한다.
이렇게 우리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한심한 착각인 주관적 전능을 부추겨서 꼴 보기 싫고, 혐오스럽고, 역겨운 세상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음을 외쳐댐으로써 정의롭고 바른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자기 모습을 입증하려고 한다.
그리고 욕망을 물리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사욕에 사로잡혀 인간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절망감을 환기시키고, 그 잘난 믿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를 부숴버리려고 한다.
우리는 아무리 인간과 세상이 막장이어도 절망보다는 희망을 노래해야 하니까 세상을 향해서는 절망의 시나리오를 완성해내고 자신에게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영웅의 칭호를 부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건 세상의 타락이고 어지러운 세상을 개선하려는 올바른 자신을 인정받으려는 자기기만에 익숙한 자아를 늘 자각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줄 알아야 한다.
최 수 호
현대행동심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