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데 누이에게서 한 뭉치의 반가운 소포가 도착할 것 같은 날빛이다. 가을엔 편지를 쓰겠다는 노래가 있었던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상자를 열자마자 곱게 접힌 피붙이의 편지! 그런 우편물의 상상만으로도 내 입가엔 미소가 머문다. 대낮의 골방에 틀어박혀 램프를 켜고 읽는 옛사람들의 편지 구절, 구절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퇴계 선생과 고봉 선생은 일생에 딱 세 번 만났다고 한다. 장수는 장수가 알아보더라고 시쳇말로 서로에게 한 눈에 꽂힌 두 분은 장장 8년여에 걸쳐 서신으로 상대를 향한 특별한 마음을 전했다.
아쉬운 작별 후 자주 꿈속에서 뵙는다는 젊은 고봉의 고백에 백발의 퇴계선생 역시 당신의 꿈속에서 고봉의 활짝 웃는 얼굴을 만났다고 답하셨던가.
고루한 학문에 파묻혀 지내는 유학자들에게 찾아오기 힘든 게 웃음의 순간이려니 그 고적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글을 읽으시고 삼가 한 번 웃으시기 바랍니다’라는 마지막 당부를 추신처럼 잊지 않으셨던 고봉 기대승과 ‘벗은 부디 한바탕 크게 웃으시길… ’하셨던 퇴계 이황선생. 무릎 꿇고 편지를 펼친다고 하셨던 건 어느 분이었나.
깍듯한 어투로 예를 다한 서간문 사이사이에서 흐르는 따뜻한 정(情)의 물살. 혹여 국화꽃 만개한 가을날이면 서로 한 방에서 마주할 날이 있게 되려나, 간곡히 만남을 고대하던 글귀들이 즐비한 양선생문답첩(兩先生問答帖), 그 노란 표지에 불현 듯 스며나는 국향 또한 아찔하다.
편지를 쓴 지가 언제였나? 그것도 손 편지라니, 이젠 기억조차 아득한 일이다.
스무 해 전이던가. 우연히 해후한 여학교 때 친구가 보여줄 것이 있다고 내밀던 한 장의 낡은 종이. 곱상한 계집애가 삽화처럼 그려진 종이에 적혀있던 절절한 우정 고백에 내 얼굴이 붉어졌다. 폐부 가득 차오르는 정체모를 감흥을 도무지 주체할 수 없던 그 시절의 나는 수첩 가득 무언가 끄적거리길 좋아했다. 책을 읽다가 만난 감명 깊은 문구들을 도용해 남발했을 숱한 편지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어느덧 고질이 된 편지 쓰기는 세월 훌쩍 뛴 새댁 시절까지 이어졌다. 아무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어 더더욱 고달팠던 나는 누군가를 향해 날마다 하소연하듯 편지를 써댔다. 삶이란 거친 항해에서 이제는 가까스로 연안에 닿았다고 할까. 그런데도 종종 누군가를 향해 편지를 쓰고픈 충동에 휘말린다.
‘내가 화정(和鼎)으로 연연해서 그대를 좋아함이 아니라 그대의 맑은 향기 심히 좋아서’라 하셨던가. 스스로를 산옹(山翁)이라 칭하셨던 날의 퇴계 선생의 편지에 등장하는 화정은 예날 조미료로 사용하던 소금과 매실이다.
말 그대로 두 분의 교류는 금란지교(金蘭之交)였다.
세상살이 잇속을 꾀하여 얽히고설키던 누추한 교제가 아니다. 대를 쪼개어 엮은 대문 옆에 쑥대로 작은 문을 달아 옹기로 들창을 닫고 옷 두 벌을 번갈아 입으며 이틀에 하루치의 음식을 먹는 가난한 삶을 꾸릴지라도 마음은 훌훌 천하를 주유하시는 자유를 누리셨던 두 분이다.
‘누가 새장 속의 새를 놓아주어 외로운 돛단배와 함께 옥루(玉樓)를 올라가게 하는가!’ 추사난금(秋思難禁), 깊어가는 가을날이면 치닫는 생각의 가없는 경지를 퇴계선생께 펼치셨던 고봉 선생.
노 재상(老 宰相) 퇴계선생에 비해 새파란 나이의 풋내기 학자에 불과했던 고봉, 하지만 두 분은 나이와 신분을 초월했다. 끝없이 배회하는 학문의 길에, 척박한 인생행로에 소금과 매실 역할을 해주는 지음지기(知音知己)의 만남이 그 아니 소중하랴.
도끼와 끌 자국이 고스란히 남은 글이 오싹 부끄러울 때마다 그 부흔대루(斧痕帶累)를 말끔히 지워내 줄 벗이 아쉽다.
매번 엉너리 치듯 서툰 글에 머뭇대다가 마주하는 쓸쓸함. 그럴 때마다 짝 없는 봉놋방의 늙은 총각 신세처럼 서글퍼지지만 묵직한 부피의 소포는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나날이 한기(寒氣) 머금어가는 절기 탓일까. 정 담뿍 담긴 손윗누이의 손 편지만은 간절하다.
김 현 임
작가·문화해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