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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구분을 거부하는 이유
작성 : 2014년 10월 22일(수) 17:35 가+가-
우리는 순수함의 매력을 강렬하게 느끼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전혀 해를 입히지 않는 선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본능적으로 악한 짓을 할 의지도 없고 복수도 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 그럴 가능성에 대한 의심이 들면 고통스럽지만 자신은 순수한 사람과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선이 어떤 것인지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실천할 능력이 없음’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악(순수함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숨길만큼 약삭빠르지만 악을 질식시켜 완전히 제압할만한 힘이 없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시기심에 끌려가게 된다. 문제는 자신이 갖지 못한 선(순수함을 실행하는 것)함을 파멸시키는 역할을 끝까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스스로 상대에게 뒤처지는 느낌에 상대의 선이 악의에 찬 완벽한 위장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적대감은 커져만 간다.
이런 과정이 심화되어 가면 갈수록 더욱 악랄한 짓을 하면서도 상대를 보호하기위한 것이라면 정당화시켜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적대적 시기심은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 같은 착각이 확신이 되어버리면 비난과 폭력을 낳게 함으로써 서로가 파괴되는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그런데 시기하는 속성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본질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시기심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천성적으로 타고난 타락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시기하는 적대감의 형태는 인격도야를 통해 변형시킬 수는 있어도 일어나는 적대감을 온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선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자아에 아파하고, 누군가는 악을 알지 못하기에 선하기만 했던 자아를 보호해내지 못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인간은 악을 알지 못하기에 선하다는 자기기만이 깨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적대감이 일어나면 순수함을 보호해내지 못하고 자제력을 잃고 적개심에 휩쓸려버리는 것을 보면 인간의 본성 가운데 악이 선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악은 윤리적, 도덕적, 이성적인 행동조차도 손쓸 틈을 주지 않는 운명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악한 본성에 대응해서 반응할 만큼 능력이 없는 까닭에 매순간 늘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악한 성향을 인정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자기 행위의 결과를 감수하는 선택밖에 별도리가 없다. 우리가 신과 담판을 하려고 하는 것은 공정한 창조자라는 신이 그의 권위를 휘두를 때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전혀 공정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흔히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보편적인 적대감을 의식하려는 노력을 통해 선한 성품을 지켜내야 한다. 강자의 권력이 갖는 속성은 폭력은 냉정한 이성이 아니라 더 강력한 폭력으로 저지하는 것이다.
더 강력한 폭력은 자신의 권력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부당한 규칙도 정당화할 수 있고, 어느 누구에게도 독자적인 판단은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권력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시기심 때문에 스스로 선과 악을 구분하기를 거부한다.
시기심이 존재하는 한 진리가 통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세계 질서를 보장하려는 희망은 기만인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현실,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은 긍정하고 수용하는 것만이 그런 사태를 수습하고 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다.
인간의 시기심이 존재하는 한 언제라도 악을 예상해야 하고, 선은 보상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필요가 없다. 진리와 정의를 보장하는 약속된 신의 세계는 과연 존재하는지를 의심하게 되면 자신을 운명에 맡기고 자의적인 것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늘 불안하게 살아야 하고, 선과 악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야만 한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모든 공동체 생활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언제라도 폭력을 행사할 준비를 하고 살아야한다.
만약 인간들이 시기심을 의식한다면 시기심을 억제할 가능성도 생길 것이고, 시기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악을 의식할 수 있다면 악을 통제할 수 있어 악을 더 이상 저지르지 않고 살 수 있겠지만 악 자체를 자기 보호를 위해 정당화해야 하기 때문에 악의 근절은 불가능한 것이다.
선의 지혜와 결실을 체험해보면 선하게만 살려고 하겠지만 삶의 현실에서는 악과의 충돌을 완전히 피할 수 없으므로 선함만의 삶에 온전히 충실할 수 도 없다.
다만 자기가 자신의 삶에 적정한 선과악의 조화를 이루어냄으로써 자아적만족을 갈구하는 길밖에는 없다.


최 수 호 현대행동심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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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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