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이때처럼 빛나고 아름답고 화창한 날들이 있으랴. 대지를 달구는 여전히 뜨겁고 열정적인 태양, 하지만 그것은 차가운 겨울의 서곡(序曲)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하염없이 기다리며 초초상이 부르던 나비부인의 ‘어떤 개인 날’, 그 가사처럼 10월의 찬란한 날빛, 그 쾌청한 하루, 하루가 마냥 안타까운 이유다.
인생의 10월이 분명한 나이 이순(耳順)에 이르러, 꼽아보니 거의 10년 만에…라고 했던가. 고교동창회 참석을 앞 둔 그는 설레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 또한 덩달아 뒤채다가 펼쳐보는 시다.
취객 비틀린 노랫가락 지우고
성가대 눈부신 합창 지우고
무한공간으로 이동 한다
배후에 낮은 골목길
돌 던지는 아이
남기고
이윤택의 시 ‘돌 던지는 아이’
맞아,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 우리의 젊은 날! 아침마다 올리던 경건한 묵송(默誦)의 기도와 입 모아 부르던 찬송가는 귓전에 아련하건만 그 좋은 시절은 꽃밭에 돌 던지고 달아난 아이처럼 종적 없이 사라졌다.
평소완 달리 공들여 화장을 했다. 남학교 교문을 들어서려니 사십년 전 문예반의 일원으로 문학행사에 초청 받고 입구에서 쭈뼛거리던 열일곱 계집애와 다름없어 속웃음이 터진다. 유유한 세월 덕택에 문필가라는 호칭으로 몇 번이고 들랑거려 어느덧 익숙해진 학교가 아닌가.
그런데 늙수그레한 노년의 학생들 무리 속에서 초로 여학생의 가슴이 뛴다.
지울 래야 지울 수 없는 낙서처럼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살들. 확인하자마자 떠꺼머리 적 이름과 별명을 번갈아 부르며 악수를 청하기가 무섭게 건배에 돌입이다.
막걸리, 맥주, 소주…. 거쳐 온 아쉽고 부끄러운 세월을 잊게 하고 지워주는 건 오로지 탁자 위에 모셔진 주(酒)님, 그 술뿐인가. 연신 따르고 마셔대며 파안대소(破顔大笑)다. 그의 동창이라야 몇 분 빼고는 거의 초면, 더구나 일면식 없는 부인들과는 동석조차 껄끄러운 사이, 하니 부질없이 앉아 내미는 술잔 골라 마셔가며 ‘금쪽같은 내 친구’라는 제명의 동창회 명부수첩이나 뒤적일 수 밖에다.
명실상부 이 지역의 명문고이니 칸마다 내 노라는 직업들이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빈 칸으로 남은, 작고(作故)라 기재된 앳된 얼굴에만 내 눈이 가는 걸까. 물론 인생의 유턴을 도는 과도기, 그 산모롱이에 돌발 상황인들 없었을까만 감상으로 내모는 몇 잔의 술 탓인가. 해맑은 얼굴로 추하고 척박한 세상을 견딜 수 없어 파르란 머리에 죽음을 택한 정(淨)한 영혼의 소년들이라 치부한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하듯 짚어가며 연유를 묻는다.
더러는 사고로, 더러는 그조차 알 수 없는 정확치 않는 이유로 스무 살 남짓 약관(弱冠)에 훌쩍 떠나버린 이들을 보며 나는 이런저런 홀로 생각에 빠진다.
머릿속을 떠도는 어제의 그 끔찍한 사고의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모두를 경악에 빠트린 세월호 참사를 억지로 지워갈 무렵 또 다시 발생한 대형 사고다. 후진극형 안전 불감증이 부른 사고라는 질책 또한 반복된다.
환풍구 추락사고로 수 명이 유명을 달리 했다는 비보에 귀를 막고 싶어지는 시점이니 함께 모여 떠들며 술 한 잔 나눠 마시는 이 작은 행복이 더더욱 소중히 여겨지는가.
‘어이, 친구 우리는 7:1의 경쟁률을 뚫고 학교에 들어 왔네’ 자부하는 동창회 지(誌)의 글귀가 스친다.
그 경쟁을 시작으로 알게 모르게 우리는 얼마나 또 많은 생의 경쟁들을 거쳤던가. 그렇다면 사십 년 흐르는 세월 동안, 우리가 애면글면 이루고자 애쓴 것들, 또한 애써 이룬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너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가는 길도 걱정하지 말세. 삶의 맛을 조금은 싱겁게 요리하는 나이가 아닌 가’ 이제는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여유를 갖고 살자, 권하는 시에도 공감한다.
몇 날 며칠 개인 날이 계속되었는데 뜻밖의 폭우가 오열처럼 쏟아진다.
삼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