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와 장성군은 조선 500년의 이론적, 교육적 기반을 제공하는 등 한국 특유의 공간유형과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필암서원의 세계유산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고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참 잘한 일이다.
장성군은 필암서원이 2011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된 후 그동안 한국 서원의 현대적 계승과 활용이라는 주제로 국내외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적극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만강의 사의를 표한다. 광주 전남에서 유일한 유네스코 등재신청 대상인 필암서원이 세계유산으로 선정되면 위상제고는 물론 국내외에서 장성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암서원은 도학자 하서 김인후 선생을 배향하는 역사성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철폐에도 존치돼 조선시대 서원의 전형을 유지하고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꼽힌다.
그럼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은 어떤 분인가?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뤘던 분으로 문묘에 모셔진 정몽주 등 ‘동국 18현’ 가운데 유일한 호남인물이다.
하서 선생의 삶은 호남 절의의 근간을 이뤘다. 선생은 제자로 가르쳤던 인종이 갑자기 승하하자 관직에서 물러난 후 15년 동안 다른 임금을 섬기지 낳고 초야에서 학문을 닦았다. 이른바 “충신 불사이군”을 지킨 것이다. 하서 선생은 호남의 유학자들에게 학문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면앙정 송순의 문인이고, 송강 정철의 스승이기도 하다. 또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나 미암 유희춘 등 당대의 문장가들과는 사돈지간으로 학문과 교분을 나눴다. 특히 하서 선생은 퇴계 이황과 8년 동안 ‘사칠논변’을 펼침으로써 조선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고봉 기대승의 학문에 자양을 공급한 큰 선비였다. 또한 성리학을 연구 정진해 ‘천명도’ ‘주역관상편’ ‘서명사천도’ ‘가례고오’ ‘백련초해’ 등을 저술했으며, 태극음양론, 사단칠정론, 인심도심설을 통달했다.
시와 부 1700여수를 남겨 전해오는데, 모두 도학과 도덕에 연유한 주옥같은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논설도 남겼다. 먼저 시를 들어 사상을 알아보고, 다음에 논설을 분석해 절의를 알아보고자 한다.
“학문이란 다름 아닌 마음에 달려 있으니 방심을 거두면 어려울 게 없다. 온갖 이치 마음속에 다 있으니 항상 마음 잘 먹어야지 방심해선 안 된다.”
이 시를 볼 때 첫째, 하서 선생은 마음 다스리는 공부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갖 이치가 다 마음속에 있으니 방심하면 자신을 편색한 상태에 빠트려서 도덕성을 질식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부단한 성찰과 수행을 해야 한다.
둘째, 하서 선생의 도학상 인간본질의 실현은 극기로써 타자의 삶을 성취시켜 주는 데에 목표를 두었다. 선생의 학문적 목표는 결코 자신의 개인적인 완성에 있지 않았다. 만물에 대해 개방적 생명정신을 타고난 선생의 완성은 곧 타자의 성취를 예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하서 선생이 자임한 이른바 자기를 완성함으로써 남을 성취시킨다는 ‘성기성물’의 이념이다. 하서 선생의 사상은 인류애와 생명애를 그 정점에 담고 있는 ‘인(仁)’이다. 인이란 ‘사랑’이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슬픔과 고뇌와 기쁨에 동참해 같이 슬퍼하고, 같이 괴로워하고 같이 기뻐하는 것이다.
일언이폐지하면 하서 선생의 사상은 사랑의 인간학이요, 그것도 실천적 사랑의 인간학이다. 선생은 인간의 우주적 본질을 알아 그것을 당신의 삶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정조대왕 20년 6월정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내가 김하서를 특별히 생각하는 것은 도학·절의·문장을 다 갖춘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하서 선생의 ‘사랑의 인간학’을 언급한 게 아닌가 싶다.
하서 선생은 ‘양광위노론’ 이란 논설을 썼다. 양광위노란 미친 체 하고 노예가 된다는 뜻이다. 선생은 비간과 미자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이었지만 기자에 대해선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양광위노론을 썼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비간과 미자와 기자가 직면했던 역사적 상황이 인종이 돌아가셨던 역사적 상황과 하서 선생의 처지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인종을 잘 보필해 요순과 같은 어진 정치를 펴보고자 했던 하서 선생은 인종이 갑자기 승하하자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과 지극한 슬픔을 겪었다. 인종이 문정왕후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됨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선생은 ‘조신생사’를 써 지극한 슬픔을 토로했다. 조신생사는 진나라 헌공의 후비 여희가 아들 해제를 낳자 자기 아들을 태자로 삼기 위해 태자인 신생을 모함해 죽이려 했을 때 이를 해명하면 부왕 헌공의 마음이 상할까 싶어 말없이 자살한 신생을 애도한 글이다.
문정왕후에 의해 죽음에 이른 인종의 처지와 비슷하기에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비유로 들어 인종의 억울한 죽음을 하서 선생은 애도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조신생사’가 아니라, 조인종사인 셈이다.
고도의 메타포가 있어 훌륭한 문장이다. 인종이 승하하고 부패한 외척세력에 의해 국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삶의 기로에 선 하서 선생은 깊은 고뇌에 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서 선생은 기자처럼 양광위노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명종이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병을 핑계 삼아 벼슬길에 나가자 않다가 끝내는 술에 취해 미친 사람 행세를 함으로써 죽는 날까지 절의를 지켰던 것이다.
하지만 장성군수는 하루 속히 직원들에게 한문교육을 시켜야 한다. 첫째, 하서 선생의 사상을 이해해야 되기 때문이다.
둘째, 윤리 강상이 무너지고 도덕이 땅에 떨어져 청소년들의 범죄가 날로 창궐하고 있는 까닭이다. 장성군 당국은 도의의 중요성을 십분 인식하고 하서 선생 사상 연구에 심혈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이 준 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