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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여행
작성 : 2014년 10월 07일(화) 17:17 가+가-
적막한 갯벌의 유혹도 뿌리칠 수 없었다.
평화로운 고적감이랄까. 지도 끝자락에 자리한 여여심(如如心) 여사의 거처엔 정의라든지 명예 같은 허무감을 몸소 체험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풍만한 자유로움이 출렁인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는 예고에 겁이 나 딸내미 혼수 이부자리처럼 바리바리 싼 이불 짐까지 동원했다. 갯벌의 동쪽 숲 그늘 아래 닦아놓은 야영터의 첫 손님인 셈이다.
인생이란 진지한 사건과 깊은 감동, 그 한 켠에 우스꽝스런 것을 놔두기를 좋아한다던가. 괴로움과 기쁨은 본디 같은 근원에서 출발하는 같은 박자의 음률이니 둘 다 우리 생에 요긴한 아름다운 과정이란다.
그래도 쓸쓸함이란 삶의 허기에서 오는 고통은 때때로 우리를 견딜 수 없는 수렁으로 내몬다. ‘오호라! 여행, 그 작은 원천!’이라던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먼지 풀썩거리는 내 영혼의 샘을 청소하려는 게 이 여행의 목적인가.
도처가 헝클어진 형국이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해결해야할까 난감해지는 순간마다 문득 문득 머릿속을 맴도는 전연사(典涓司)라는 호칭이다.
궁중의 온갖 행사를 담당하는 관청인 전락서(典樂署)에 소속된 부서로 시내나 작은 물줄기가 흐르는 모양을 뜻하는 연(涓)이 들어가 대궐의 청소를 맡는 곳의 명칭이 되었을까.
본디 제거사(提擧司)를 개칭했다는 옛 관청의 힘을 빌려서라도 부산하고 어수선한 머리를 말끔히 소제하고 싶어지는 순간마다 나는 여행을 꿈꾼다.
겨우 손가락 하나의 키로 자란 파초가 경계 삼아 줄 지어 심어졌을 뿐 말 그대로 울타리 없는 집이다. 대나무에 기대 흐드러진 능소화가 눈길을 잡는다. 주황이 아니라 타는 주홍의 능소화, 그 뿐 아니다. 홍색 인동초, 섬백리향, 하다못해 그 흔한 코스모스도 저마다 빛깔이 독특해 예사롭고 흔한 종(種)들이 아니다.
감성은 날카로운 힘을 지니지 못한 대신에 삶의 무늬나 바탕을 보여주는 데에 근원적인 힘을 발휘한다던가. 뭉클뭉클 햇솜 피워내는 목화꽃 두 송이를 주먹만 한 오지항아리에 꽂아 둔 절묘함! 분홍 보자기 가득 펼쳐놓은 구절초 꽃송이들! 아무튼 꽃 한 송이 한 송이, 돌멩이 하나 하나가 감성 뛰어난 안주인의 야문 손끝이 빚은 뛰어난 작품들이다.
사람은 고독한 바다에 떠 있는 하나의 섬이니 사람들 사이에 아무리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해도 그 사이에는 심연(深淵)이 놓여 있다고 했다. 그 깊은 소(沼)는 애정이라는 가교(架橋)를 통해서 소통된다 했으니 불과 반년의 친분이지만 첫 순간에 서로를 알아본 그 눈빛만으로도 제법 탄탄히 세워진 인연의 다리다.
사랑이라는 그 다리를 매개로 서로 다른 두 섬 사이를 넘나든 달까. 그동안 세 분께서 내 집을 서너 번 방문하셨고 나는 두 번째 방문이다. 대광주리에 담긴 내 집 홍시를 부끄럽게 하는, 품평하자면 일급품이다. 이렇게 탐스런 과일도 있을까.
대바구니에 수북이 담겨진 과일의 풍성함에 탄성이 터져 나온다. 금방 수확한 과일에서 풍기는 향내야말로 성숙과 추수의 정수(精髓)니 집주인의 후한 배려가 방문객을 지극한 겸손함으로 유도한다.
동갑내기 말띠로 올해 환갑을 맞는 여여심 여사 부부와 인자함이 가득 흐르는 얼굴의 스님 한 분, 도합 세 분이 꾸리는 알짜배기 살림살이 곳곳에 광택이 흐른다. 정성스럽게 가꾼 마당의 화초들은 예고편이다. 갯벌 접한 산책로의 오솔길 도처에 자리한 해국, 잔디, 맹감, 보랏빛 도라지가 지천이다. 12시간 간격이라던가, 하루해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듯 천천히 들어왔다 되돌아가기를 반복하는 조수(潮水)의 장난질에 덩달아 신 난 물고기들의 유영이 눈부시다.
맥박처럼 귓전에 감도는 바닷소리! 초보 낚시꾼에게 억울히 잡힌 물고기 몇 마리로 천하일미 매운탕을 끓이시던 여사가 갑자기 “아이쿠, 큰일 났네!” 하셨다.
긴요한 양념거리를 빠트리신 걸까? 아님 절대로 첨가해서는 안 되는 재료를 실수로 첨가하신 걸까? 순식간에 스쳐가는 칼칼한 매운탕에 대한 낭패의 예감! 그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일성이 이어진다.
“아이쿠! 운저리 매운탕이 이렇게 맛이 있어도 되나?”
폐만 잔뜩 끼치고 간다는 식상한 인사말은 삼간다. 대신에 이박 삼일 내내 넉넉히 베풀어 주신 덕 흠뻑 누리고 간다는 답례로 다음을 기약했다.


김 현 임 작가·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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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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