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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人花)
작성 : 2014년 09월 30일(화) 17:38 가+가-
될수 있으면 화초들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고 싶었다. 그 시도로 머리맡에 놓아 둔 화훼도감이다. ‘넓은 정원이 아니어도 단 한 송이만이라도 꽃을 가꾸고 싶은 우리의 마음은 표현될 수 있다. 꽃과 인간이 함께하는 그 곳에는 사랑도, 미움도, 슬픔도, 기쁨도 이 모두가 아름다운 생명의 불꽃이 되어 타오른다’는 첫 장의 글귀에 스쳐가는 몇, 몇 꽃 닮은 얼굴들이다.
이틀 전 문인들의 연례행사에 다녀온 후유증이리라. 영호남의 여섯 도시에서 모인 백여 명 남짓의 문필가들의 향기의 여운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한다.
밤새 노래와 술로 동서 간의 우정을 나누느라 소란하던 자리가 끝나고 들어와 언제 잠이 들었던가. 꼭두새벽부터 터지는 웃음소리! 언제나 그렇지만 여류 문인숙소의 아침은 떠들썩하다. 각종 피부미용법에 요가 비법, 효과 탁월한 영양제 등등의, 단골화제 메뉴와 더불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인물평이다.
그렇다고 흠집 내기 자리가 아니다. 그 행사에 큰 몫을 하시는 주요인사인, 대개 ‘그 분’이라 지칭되는 분들이 회자되는 자리이니 주로 덕담이 오간다. 이번엔 E회장님이 도마, 아니 방석에 모셔 앉혀졌다.
‘남편은 대학 2학년생의 가난한 만학도로서 너무 가난해서 결혼도 못할 형편이었지만 우리는 10여 년간 키운 사랑을 재다짐하며 결혼을 했다. 남편은 졸업 후 급 행정공무원 시험에 합격, 성실하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또한 몸이 무척 허약했던 남편은 건장한 체격으로 변모했다. 결혼 15주년이 되던 날이었다. 출근 길 ‘좋은 일이 있을 오후를 기대하라’ 던 남편의 전화를 받고 나간 식당에서였다. 상 밑에서 준비해 둔 무언가를 꺼낸 남편이다.
“당신에게 결혼반지를 못해 준 것이 늘 마음에 걸렸어. 너무 늦었지? 하지만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은 이 거 보다 백 배, 천 배야”
아내의 글 속에 등장하는 남편으로서의 그 분에 대한 추억이 정겹고 따뜻하다. 다소 근엄한 얼굴과 큰 체구에 따른 선입견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우리가 속한 문학단체의 장(長)에 추대되었을 때 적지 않은 회원들이 그 분이 가진 지위와 경제력이 우선된 건 아닐까 염려했다. 하지만 그 건 기우였다.
조롱조롱한 콩 모양의 두과(荳科), 말오줌풀 모양이라는 삭과(?果), 잘 담긴 자루모양인 대과(袋果), 뚜껑이 열려야 비로소 드러나는 개과(蓋果), 후르룩 불면 날아가 버리는 연약한 민들레 홀씨 모양의 유과(?果), 단단한 껍질에 쌓인 도토리 모양의 견과(堅果)... . 열매뿐인가. 심장형(心臟形), 도란형(倒卵形), 콩팥형 따위의 이파리의 모양에 따른 부름씨와, 하나가 자라고 나면 그 위쪽에 한 잎이 따라붙는 호생(互生), 잎이 나란히 곁들여진 대생(對生), 바퀴모양새를 이루는 윤생(輪生)... 등등은, 이파리가 줄기 쳐 자라가는 모양새에 따른 구분법이란다.
갖가지 화훼 종(種)의 구분법에 나는 한 사람이 참 사람으로 완성되는 인격형성의 과정을 더듬기에 이른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주인공인 피터 오툴의 생애를 훑는다. 식민지 아일랜드의 가난한 출판업자로 태어난 그는 13세에 학교를 그만 두고 생업에 나선다.
창고지기, 사진가의 조수를 전전하는 고초 끝에 드디어 요오크셔 이브닝 뉴스의 기자로 발탁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편집장은 ‘배우 같은 다른 일을 택하라’며 돌연 해고를 통보한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연기학원에 등록을 하고 마침내 전 세계인의 마음에 각인된 로렌스를 연기하게 된다. 흰 피부에 186cm의 장신(長身)으로 사막의 깨끗함을 사랑하고 아랍인의 영광을 진심으로 원했던 로맨티시스트 로렌스를 완벽히 재현해 낸 그의 카리스마!! 그것이 전 세계를 매혹시킨 것이다. 자신의 연기는 마법과 땀을 섞어 완성한 것이라 했던가. 그러나 그는 이후 방만한 생활로 카지노에서 거금을 탕진하고 알코올중독과 위암에 시달린다.
‘정과(正果)’, 애초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운명이라니 꽃은 거부할 수 없는 수순에 따라 피어시들 뿐이라면 할 말이 없다. 한 때 우리의 눈을 현기증 나도록 매료시키더니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그라진 꽃들이 한 둘이던가. 사람꽃 역시 그 정과(正果)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노력과 겸손이라는 제 속에 비장된 천혜의 자양(滋養)으로 변신을 꿈꿀 수는 있다. 해마다 말라죽지 않고 꽃 피고 열매 맺는 성장을 되풀이하며 우리에게 한없는 기쁨을 주는 숙근초(宿根草)를 최고로 치는 까닭이다. 덕성이라는 사람꽃의 뿌리는 결코 시들지 않아 그 여러해살이 꽃은 두고두고 이름다이 피어나 주변에 훈훈한 꽃향기를 풍기리니.


김 현 임 작가·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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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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