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오늘로 5개월을 맞았다.
304명의 무고한 목숨이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서 속절없이 스러지고, 대신 켜켜이 쌓인 이 나라의 적폐가 검은 바다 위로 흉체를 드러낸 지 다섯 달이 되는 날이다. 달라져야 한다고 다짐했고, 달라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무엇도 바뀌지 않았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여전히 세월호에 갇혀 있다.
여야는 참사 발생 후 “4·16 이전과 완전히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지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극한 대립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여야는 국회를 열어놓고도 법안심의는 물론 국정감사도 결산·예산안 심의도 착수조차 못했다.
국회가 할 일을 전혀 하지 않으니 한국 경제도 올스톱 상태다. 경제 살리자고 만든 법안이나 정책들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세월호 침몰은 분명히 이 나라를 개조하고 혁신할 출발점이 될 수 있었다.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최소한의 안전마저도 무시한 해운업계의 불법·비리에서부터 나라 구석구석에 쌓인 적폐를 도려낼 기회였다.
나라의 안전체계와 각자의 안전의식을 되돌아볼 기회였고, 더욱 깨끗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온 국민이 이념과 정파, 계층을 떠나 손을 맞잡을 기회였다.
그러나 304명의 희생이 우리에게 적폐와 맞서 싸워 이기라고 명했건만 지금 이 나라는 적폐는 제쳐놓고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려 서로에게 손가락질만 해대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온 나라가 옴짝달싹을 못하는 지경에 놓인 가운데 세월호 침몰을 자양분 삼아 분열과 대립, 갈등이 만개해 가는 현실에 자괴감을 떨치기 어렵다.
부질없어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참사 이후 정부가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을 올곧이 함께하며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했다면 지금과 같은 극단적 불신은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유족들 편에 서서 과감하게 적폐와 맞서 싸울 모습을 보였더라면 지금처럼 가해자인 양 취급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된 문책조차 하지 못하며 정부 스스로 신뢰를 걷어찬 것이다.
정치권의 책임은 더 크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논의 과정 등에서 정부를 감싸는 데 급급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스스로 공방의 타깃을 ‘적폐’에서 ‘정부’ 쪽으로 옮겨놨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또한 정부의 무능을 파고드는 데에만 골몰했을 뿐 더 큰 틀에서 나라의 적폐를 파헤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일은 뒷전으로 미뤘다. 정략적 행태를 떨치지 못한 것이다.
정부의 무능과 정치권의 무책임이 빚어낸 그늘은 너무나 심각하다.
국회 정상화가 늦어지면서 국정감사와 정부 결산·예산안 심의는 수박 겉핥기식 졸속처리가 불가피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