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오래도록 짓궂은 날씨 속에도 올 추석은 보름달이 크게 뜰 거란다. 세월호 참사 3개월이 지나도록 세월호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 하나 유가족들의 바램 대로 제정하지 못한 채 소위 민생이라는 프레임의 기만성에 밀려 세월호 사건은 서서히 잊혀져 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사실 끔찍하고 가슴 찢기 운 듯 아픔 사건이 잊혀지는 것은 현실론으로 보면 타당하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월호 말만 들어도 지겹다”하고 “세월호 사건 후 경제고 뭐고 나라 꼴이 되는 게 없다” “살기가 더 더욱 힘들어졌다”고도 한다. 수긍이 간다. 별로 반대할 명분이 없다. 그러나 깊이 따지고 보면 속상하고 울화통이 치밀고 도대체 이 나라가 이렇게 기만성으로 국민을 우롱하며 어디로 갈 것인가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다. “레이몬드 조”는 ‘관계의 힘’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1만 명의 인맥보다 한 명의 친구가 더 중요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예수님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버려두고 길 잃어 헤매는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섬이 바른 판단임을 강조하셨다. 모두다 경제 논리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서 ‘탈옥’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술수를 쓰고 비열한 프레임들을 가동했다고 입을 연 한 교수는 그 중 가장 잘못된 것으로 막말 퍼레이드를 들었다.
종편들을 매개체로 자영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파고 드는 것은 세월호 때문에 소비심리가 죽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곁들인 것이 ‘세월호와 대 민생 관계’ 이다. 대통령은 최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어렵게 살린 경제 회복의 불씨가 다시 꺼질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시했고 이에 조중동은 맞장구 치듯 “한국경제의 골든 타임” 운운하며 마침내 “세월호 출국전략이 필요하다” 고 외쳐댔다. 취임하자마자 경제살리기 운운하며 획기적인 부동산 대책으로 중산층의 입맛을 맞춘 최경환 부총리는 반짝이는 보수층의 인기에 편승하여 민생법안과 세월호 특별법 분리 처리를 외치며 야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여기서 우리는 집권당인 새누리당과 나라 최고의 통치권자인 대통령의 기만성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전부터 새누리당은 ‘민생’ 이라는 단어를 끼고 살았다.
이제는 안보를 끼고 살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서 인지 민생을 파괴할 때에도 그 단어만은 선거 때고 언제고 때를 가리지 않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 단어만은 붙들고 늘어졌고 결국 민생 쇄뇌의 차원까지 끌고 갔다.
이것은 영리함을 넘어 기막힌 술수가 자리잡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러한 그들이 ‘부자감세 철회’는 한사코 반대하고 최저생계비 인상 등에는 인색하기만 했다. 민생의 이중성이다. 또한 놀랍게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민생’을 들먹인다는 것이다. 민생이란 사람들의 살림살이 일진데 세월호 참사는 민생을 떠들어 온 그들이 목숨조차 위태롭게 만들어 놨다는 것이다. 세월호 같은 참사가 없는 세상이 민생의 기본 중에 기본이 아닐까….
그리고는 청해진 해운의 경영층을 민생을 해치는 악당들로 그 책임자를 괴수로 몰아 그 그늘에 기막히게 숨으려 했다. 세월초 진상규명 특별법 과 소위 민생법안 이라 외쳐대는 법안들을 연계 처리하려는 야당을 마치 나라경제나 민생을 돌보지도 않고 정쟁만을 일삼으려 하는 부류들로 매도하며 경제 살리기에 발목을 잡는 그들 때문에 미래 창조니 일자리 창출이니 경제활성화가 막힌 것처럼 인식시키려 하나 야당 또한 다수의 보수층 여론에 밀려 우려스럽게도 야당 무용론까지 등장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민생법안 이라 하는 법들이 무엇인가? 세월호 특별법에 가로막혀 있다고 말하며 대통령이 나서 제, 개정을 추진하는 법안들을 살펴보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의료법, 자본시장법, 경제자유구역특별법, 관광진흥법, 소득세법, 주택법, 주택도시기금법, 재건축조합초과이익환수폐지법, 도시주거환경정비법, 크루즈법, 마리나항만법 등이라 한다.
이런 법들은 창조 경제의 민낯이 ‘숙박과 도박, 그리고 ‘삽질과 공구리’이고 부자를 위한 토대가 또 다른 부자 감세와 가계 부채 증대임을 보여 주어 이쯤 되면 민생법안이 아니라 민폐법안이라고 혹평하는 학자도 있다. 전체 국민으로 보면 불과 몇 명에 불과한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을 자신들의 주장대로 제정해 달라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새누리당과 대통령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별별 말을 다해도 그들의 진실성을 믿지 않는 데 있다. 최근 당정청이 세월호법 반대 총공세에 나서는 것은 청와대와 정부가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심증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참사 당일 대통령 보고, 일반 공개가 민망할 정도로 전해 졌다는 것이고 특검 과정에서 청와대와 정부 부실 대처가 집중 조명될 위기감이 감돌아 ‘특별법 진통 = 경제위기’의 등식을 설정하고 유병언 등에 책임 돌리기가 희석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배경에 깔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월호 사건 대국민 담화 도중 눈물을 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감성에 깊은 인간애를 느끼기도 했으나 그 뒤의 대처들이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가족을 잃은 사람의 슬픔을 잘 안다. 여러분이 어떠할지 생각하면 가슴이 멘다” “무엇보다 진상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 거기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유족들이 찾아 오면 언제든지 만나겠다”
몇 달 전 대통령이 했던 말들이다. 시간이 지나 대통령의 기억에는 실종됐을지 몰라도 국민들 마음에서 조차 실종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잘사는 논리, 성장논리에 ‘유신’이 등장했었다. 정당성이나 진정성, 인간성 따위는 상관없이 무조건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적이라는 세력이, 즉 그 표가 나라를 지배할 때 이 나라가 걱정스럽게 되는 것이 아닐까?
485만 명의 세월호 특별법 처리 서명을 받아 이를 청와대에 전달하려던 가족들이 삼보 일배를 하다 경찰에 막힌 한 희생자 가족의 ‘기어서라도 가겠다는 데 좀 열어 주세요’ 빗방울 속의 절규가 한가위 추석 달을 뜨거운 눈시울로 바라볼 수밖에 없어 미어지는 가슴을 어찌할까.
유가족 주장대로 법을 만들면 법에 위배되어 할 수 없다는 분들, 그토록 법을 잘 지켜 이 지경을 만들었습니까? 묻습니다. 누군가 세월호 싸움은 ‘비인간성’에 대한 저항이라네요.
김 요 한
시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