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장이 들어설 자리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집 주인의 그런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두 개의 화장실은 꽤나 넓은 편이다. 날마다 하루의 중대사(?)를 보는 사이 벽 한 켠에 쌓인 책들을 골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마광수 씨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등과 함께 내 집 화장실에 비치해 둔 눈요기용 책이었다.
‘이 책은 중국 연변에서 활약 중인 작가가 오랫동안 수집해 온 세계 여러 나라의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실화들을 한데 모아 엮은 실화집이니 독자 여러분은 이 책에 실린 신비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탄성을 연발하게 될 것’이라고 미리 밝힌 것처럼 책에 기록된 믿어지지 않는 실화들은 상식과 논리 저편의 희한한 것 투성이다.
‘침몰한 배 안에서 5년을 생존한 사람들’, ‘사람을 먹는 연못’, ‘공중을 날아다니는 팔뚝’의 제목들이 그것으로, 엮은이의 말처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 마치 가상의 세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런데 내 집 화장실에서 설마? 설마? 고개 흔들어가며 읽던 그 책의 황당한 내용들과 너무도 흡사한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않고 터지는 요즘이다.
서울 강남 한복판 골목길에서 일어난 일명 ‘묻지마 살인’. 범인은 겨우 스물을 갓 넘긴 나이였다. 여드름투성이 얼굴이 열등감의 시초였다던가. 부모들이 걸핏하면 모범생 누나와 비교를 하며 쏟은 질책, 하지만 그런 핑계도 열심히 삶을 꾸리던 참한 아가씨를 살해한 이유로는 가당찮다.
자신처럼 무가치한 존재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시도한 몇 번의 자살기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언제부터인가 꼼꼼히 작성하기 시작한 일기에는 주변을 향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죽기에는 억울했단다.
세상에나! 존경할 인물이 그리도 없었던가. 세간을 뒤흔든 엽기적인 연쇄살인범을 제 우상으로 삼았단다.
그를 흉내 내어 여자, 어린이, 자신보다 여리고 약한 쪽으로 범행대상을 순위까지 매겨가며 선정했다.
홀로 가게를 보던 할머니를 둔기로 무차별 폭행했던 첫 범행은 예행연습이었던가. 길에서 마주친 생면부지의 처녀를 마구잡이로 찔러 죽였다는 공익근무요원의 태도는 자못 당당했다.
잠들기 전 그날 하루를 되돌아보는 평범한 청년의 일기가 아니라 ‘살인일지’이자 ‘범행계획서’였다. 거기에 쓰인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문구가 오히려 낯설고 섬뜩하다.
신앙을 빌미로 거액을 갈취한 것도 모자라 무고한 희생자들을 양산한 대죄를 무릎 꿇고 사과하기는커녕 도피로 일관하던 파렴치한 목사, 그의 황당무계한 죽음도 그렇고, 요 며칠 전 남편과 직장동료를 살해해 고무통에 담아놓은 여인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너무나 소름이 끼쳐 역시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탄식과 함께 머리가 흔들어진다. 도대체 사람의 잔인함은 어디까지가 한계일까.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나. 종일 집 안을 서성, 서성. 도무지 글 쓸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글쓰기 전의 내가 보이는 병적인 증상이라는 핀잔을 받아가면서 집안 청소에 매달렸다.
실비를 맞아가며 폭풍에 널브러진 감나무 이파리들을 말끔히 치우고 나서야 방에 들어와 이 책, 저 책을 건너뛰기 한참.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얼마나 옛날에 만들어지고 그로부터 어떤 변천과정을 거쳐서 현재와 같이 된 것일까?’라는 글 입구의 물음만 연신 머릿속을 휘도는 미야모토 쇼타로의 ‘지구의 역사’라던가, 아돌프 포르트만의 ‘생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 같은 어려운 명제의 글들을 붙잡고 한동안 끙끙대었다.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결정적인 요소를 가지고 그 우열을 논하여 혹은 기뻐하고 혹은 서러워한다. 이것은 가장 어리석은 것이니 자연적 요소, 인과적 요소란 본디 인간의 자율 능력의 테두리 밖에 있어 인간의 자의식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말하자면 신으로부터 정과(定課)된 숙명적인 요소이다. 그것은 설명은 할 수 있을지언정 시비평점(是非評點)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에 잠시 고개를 끄덕였던가. 결국 어려운 문구 범벅인 논문 책을 기어이 내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세상에 난분분 벌어지는 두려움의 피신처인양 펼쳐든 동화책에서 만난 단어를 하염없이 읊조린다.
‘투한, 투한!’
‘투한’이란 인도네시아 말로 ‘하느님’을 가리키는 말이라니 요 근래 나를 경악시키는 ‘세상에 이런 일들’, 그 연유를, 그 해결책을 묵묵 일관인 저 하늘에 묻고도 싶다.
김 현 임
작가·문화해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