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고등학교에서 논술이 정규 교육과정에 들어간다. 기술ㆍ가정, 제2외국어 등 고교 생활ㆍ교양 교과 선택과목 중 하나로 포함된다.
현재는 극히 일부 학교가 정규 과목이 아닌 방과 후 수업 형태로 학생들에게 논술 교육을 하고 있다. 주로 사교육 영역에서 이뤄지던 논술 교육을 공교육 안으로 끌어들인 것은 사교육비 경감과 공교육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일단 바람직한 방향이다.
학교 여건에 따라 교양과목 가운데 하나로 선택할 수 있다지만 대학입시에서 논술이 주요한 평가 잣대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일선 고교에서 사실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조치는 입시 대비를 위해 학교 내부의 논술 교육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 사고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함양하는 데 논술 만한 게 없다. 장기적으로 어릴 때부터 독서습관을 배양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프랑스는 철학 논술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나폴레옹 시대부터 대입 자격시험으로 실시하고 있다.
해마다 철학문제 자체가 국민적 관심사가 될 정도다. 사회 지도층의 석.박사 논문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논술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대학별 논술고사를 도입한 이후 일부 대학이 입시 전형에서 논술고사를 보고 있는 반면에 고교들은 논술 과목을 개설하지 않아 괴리가 존재하고 있다. 일부 수험생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자마자 바로 논술 학원으로 달려가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논술 학원은 학부모들에게 적지 않은 비용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적자본’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시카고대학의 게리 베커 교수는 “한국학생을 가르쳐보니 어떻더냐”는 국내언론의 질문에 “한국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하지만 토론문화나 창의성은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정 주제에 관한 의견을 물으면 대뜸 ‘누구누구에 따르면’을 들먹이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는 데 논술만 한 것이 없다.
관건은 일선학교의 준비상황이다. 논술교육의 중요성이나 당위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논술을 지도할 교사가 태부족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한다. 논술을 오랫동안 사교육 영역에 방치해온 탓이다.
그런데도 논술을 정규과목으로 한다면 겉핥기식 수업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는 하지 않느니만 못한다. 되레 논술교육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사교육 수요를 늘리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시모집에서 논술(문과)과 구술(이과)시험을 가급적 배제하라는 기존 정책과도 어긋나 대학당국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소지도 다분하다. 대학원생조차 버거워하는 고난도 논술출제를 부추길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교육당국은 오는 10일까지 의견을 수렴한다고 한다. 의견수렴에 앞서 일선 교육청을 통해 논술교육이 가능한 학교 현황부터 파악해야 할 것이다. 실태조사 이후에 논술 선택과목화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교사 재교육도 필수적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정책은 현실성과 수용성을 따져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