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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호성구(畵虎成狗)
작성 : 2013년 12월 03일(화) 17:32 가+가-
종일 하염없이 눈은 내리고. 오슬오슬 한기(寒氣)처럼 밀려드는 어머니 생각.... . 행여 당신의 냄새라도 맡아볼까 뒷방의 낡은 옷장을 뒤졌다. 차마 버리지 못한 붉은색 엑스란 속치마를 반가이 큼큼 거리는데 툭 떨어지는 주머니! 수건의 호랑이 머리 부분만 용케 도려내어 안감까지 꼼꼼히 덧댄 복주머니는 분명 내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다.
내 집 벽에 붙은 포효하는 호랑이가 그려진 액자를 쓰다듬으시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에 이르도록 무심했던 운당 선생님의 화의(畵意)를 옥편까지 동원해 더듬더듬 살핀다. 당시 해남에서 포획된 한국호랑이, 그 주인공인 호랑이와 포수가 우연히 여관인 우리 집에 머물러서 호랑이를 손으로 직접 만져보았던 옛집에서의 추억도 아련하다. 하다못해 모형 호랑이라던가, 어떤 식으로든 호랑이를 집에 비치해놓으면 어떤 재앙도 다가오지 못 한다 신봉하셨던 어머니는 유독 호랑이를 좋아하셨다. 새댁시절 깊은 산중으로 나물 캐러 갔다가 호랑이 새끼를 발견해 한참 데리고 놀았다는, 흡사 전설 같은 당신의 경험담도 그렇고 어디서 구하셨을까. 호랑이의 석물(石物)을 애지중지, 잦은 이사에도 잊지 않고 챙기셨다.
호랑이, 호랑이... . 때 아닌 호난(虎難)으로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서울대공원의 호랑이다. 저를 돌보아주던 사육사를 중태에 빠트린 호랑이니 그 처리문제로 시끄럽다. 한쪽에서는 ‘피 맛을 본 호랑이를 계속해 관람할 수 없으니 격리 하던가 사살하라’는 주장이고 ‘호랑이가 우리를 나와 사람을 물었다면 그건 야성을 가진 호랑이의 본능이니 절대 호랑이의 잘못은 아니다’라는 옹호론도 만만찮다.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하여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물로 주었다는 로스토프라는 이름이 붙은 호랑이, 녀석은 제 우리를 떠나 좁은 여우 굴로 옮겨 받은 스트레스로 저지른 과오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곶감과 호랑이’, 호랑이 등에 탄 사람’ 등등. 호랑이처럼 우리 전래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 또 있을까. 특히 ‘효자 호랑이’는 그 포악무도한 야생동물에 대해 애틋한 친근감까지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느 마을의 효자가 병든 어머니의 약초를 구하러 나섰다. 깊은 산골짜기를 헤매다가 덩치 큰 호랑이와 마주쳤다. 전쟁터에서도 효자는 결코 죽이지 않는 게 하늘의 뜻, 다짜고짜 호랑이를 향해 큰절을 했다. 제 앞에서 벌벌 떨기는커녕 넙죽 큰절부터 올리는 사람이라니? 더구나 짐승인 자신을 일러 몇 십 년 전에 돌아가신 제 형님의 환생(還生)이란다. 결국 호랑이는 효자, 아니 오랜 만에 해후한 동생을 붙들고 꺼억, 꺼억 굵은 눈물까지 떨구었다. 다음날부터 효자네 마당엔 날마다 갖가지 귀한 약초에, 살 오른 짐승들이 놓여있었다던가. 그런 우화의 폐해란다. 어른들은 물론이요, 어린 아이들조차도 사나운 호랑이를 맹수로 여기지 않는 착각에 빠진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린다’는 뜻의 ‘화호성구(畵虎成狗)’는 애초 목표를 잘 잡아야지 실패가 없다는 충고다. 누군가를 흉내 내려다 잘못되면 범이라고 그렸는데 도리어 강아지와 비슷하게 되었다(畵虎不成反爲狗子)는 빈축의 말을 듣게 된다. 내가 멘토로 삼을 대상이 드문 세상이다. 호랑이 가죽은 그리기 쉽지만 그 뼈를 그리기는 어렵고 사람의 얼굴은 알아도 그 속내는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려 160Kg에 달하는 몸무게에 2m30cm가 넘는 거구임에도 팔 내밀어 악수를 청할 만큼 친근해 보이지만 언제라도 내 목뼈를 공격할 수심(獸心)을 지닌 게 호랑이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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