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또 멈춰섰다. 새누리당의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단독 처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후폭풍이 거세다.
민주당이 여당의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단독 처리에 반발해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내 직을 걸고 투쟁을 이끌겠다”며 “여론이 압박해도 국회 보이콧을 빨리 끝낼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29일 법안 심사를 위한 각종 상임위가 가동 중단되고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위한 예결특위도 파행 운영됐다.
야당 대표가 강경노선을 천명했으니 국회 정상화는 더욱 어려워졌다. 헌법상 예산안 의결 시한인 12월2일을 넘기는 것은 기정사실로 변했다. 이것만 해도 지탄의 대상인데 또 “끝까지 가보자”며 대치 늪에 빠져들고 있다.
한심한 국회다. 정기국회 회기(100일) 중 90일 정도를 허비하다시피 한 정치권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싸움질만 하고 있으니 국민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국회에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적용하면 몇 달간 국민을 위해 아무런 일도 안 한 의원들 세비 지급부터 중단해야 할 상황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 때 국민을 위한 국회, 생산적인 국회를 만들겠다고 입이 닳도록 약속했던 정치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가 된 셈이다. 오죽했으면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국회 해산제도가 있다면 국회를 해산하고 다시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까지 말했을까.
올 한 해 국회가 한 것은 싸움질밖에 없다. 나라경제가 초유의 침체 늪에 빠지고, 죽어가는 부동산시장이 또 다른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국회가 한 일은 한 가지도 없다. 부동산 긴급대책 법안은 국회서 잠만 자고 있다.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은 심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쟁이 경제살리기의 발을 묶고 있으니 경기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백년하청이다. 한반도 주변의 안보 문제는 어떤가. 중국의 항공식별구역 일방 설정을 계기로 전례없는 국가안보 위기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여야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있다. 국회를 싸움판으로 만든 데에는 여당의 책임도 크다.
정기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새해 예산안 처리다. 헌법에 12월 2일까지 처리하도록 규정해 놓은 것은 나라 살림살이 규모를 일찌감치 확정함으로써 차질 없는 집행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법정기한을 넘기는 것은 연례행사가 돼 버렸고, 졸속 심의가 다반사다. 여야는 올해의 경우 다음달 16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의결하기로 합의해 놓은 상태다. 그런데 예결특위가 헛돌고 있으니 부실 심의는 불을 보듯 뻔하다. 민주당이 계속해서 국회에 들어오지 않을 경우 부실 심의에 그치지 않고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준예산을 짜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 최악의 경우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여야는 우선 할 일부터 하고 그런 다음 싸우더라도 싸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