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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 플랜
작성 : 2013년 11월 27일(수) 17:05 가+가-
신 새벽 책을 읽다 가슴이 팔딱거린다. 깊은 숨을 몰아쉬는 내게 앙금처럼 걸리는 ‘얼’이라는 단어, 이 모두 지난 주 임청각을 다녀온 후 생긴 증상이다.
경북 안동시 법흥동에 자리 잡은 임청각(臨淸閣)은 조선 초기인 1519년에 지어진 500년의 역사를 지닌 고성(固城) 이씨(李氏) 종택으로 애초 100칸 가까운 규모의 저택이었다. 하지만 아홉 명의 항일투사들을 배출한 임청각에 일제는 끈질긴 탄압을 가했다. 명망 높은 선비의 집안은 무자비한 군화에 짓밟혀 일본수비대의 숙박소로 전락하는가하면 중앙선 철도부설을 핑계로 부속건물이 철거당하는 등의 수난이 이어져 가까스로 현재 70여 칸이 보존되었다.
‘동쪽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내 가에서 시를 읊조린다(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라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차용한 임청(臨淸)이라는 택명(宅名)에서 엿보이듯 세조의 왕위찬탈, 그 어지러움을 피해 벼슬마저 버리고 낙향한 집주인 아니었던가. 하지만 나라를 빼앗긴 불운한 시대는 그보다 더한 수치와 모욕감을 안겨주었다. ‘일제치하에서 하루를 더 사는 것은 하루의 수치를 보탤 뿐이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동구(東邱) 이준형 선생의 유서에는 아직도 선혈흔적이 선명하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아름다운 집과 재산을 버리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풍찬노숙(風餐露宿)을 자처하기가, 더구나 대대로 명맥 이어온 명문가의 종손으로서 쉬운 결정이던가. 군자정 대청마루에 걸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선생의 사진에서는 여전히 푸른 기개가 서늘했다.
‘겨레’, ‘얼’, ‘뿌리’, ‘충의(忠義)’.... 등등의, 이제는 가물가물 잊혀져가는 크고 거룩한 어휘들을 해후한 날. 나는 뒷머리를 강타 당한 듯 숙연해졌다. 돌아오기 무섭게 서점에 들러 항일운동에 관한 책자들과 ‘윤봉길 의사 일대기’를 구입했다. 새벽시간을 택해 책을 읽는 동안 문득 떠오른 분이 외할아버지였다. 내가 열 살 무렵이던 1966년 어느 여름날, 그러니까 외할아버지께서는 그때까지도 갓과 도포를 고집하셨던 분 아닌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외갓집에서 맞던 새벽녘, 어김없이 들려오던 외할아버지의 책 읽으시던 음성이 아련하다.
요즘은 좀체 만나기 힘든, 따뜻하고 정겨운 외갓집의 재현을 꽤 오래 생각했다. 마침 내 집 주변 환경이 얼마나 안성맞춤인가. 쪽빛을 따라 걷는 천연염색 문화관길도, 강 계곡을 따라 흐르는 고즈넉한 회진성길과 효와 충을 새기는 영모정길도 거닐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거기다 이조 오백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시인인 임백호 선생님 문학관까지 자리해 있으니 그야말로 영산강 역사문화 비단길을 따라 걷는 노정에 자리한 외갓집의 요건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찬조 출연인 셈이다. 뜨끈하게 데워진 구들방에서 군고구마를 먹으며 수필가 할머니는 도란도란 옛이야기를 들려주리라. 별빛 쏟아지는 밤 멋쟁이 할아버지가 기타로 연주해주는 감미로운 음악은 덤이고. 언제 잠이 들었을까. 어느덧 앞강 산자락에서 말갛게 세수 단장한 해가 나오고 너른 마당에선 적지 않은 수의 고양이가 강아지가 사이좋게 어울리는 평화로운 외갓집, 그곳엔 토실하게 살 오른 암탉이 낳은 따뜻한 달걀을 꺼낼 닭장도 준비해 두었으니.
오늘 나는 그 외갓집 플랜에 항목을 하나 더 추가했다. 우리 선조님들이 피로 지켜낸 우리 민족의 얼과 소중하고 소중한 이 나라에 대한 가슴 뭉클한 감사!! 그래서 외갓집에 들를 꼬마손님들에게 우리의 역사와 독립운동사 이야기를 결코 빠트리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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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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