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 수는 줄었다. 하지만 드넓은 광장이 수십만 개의 촛불로 가득 채워진 건 변함이 없었다.
촛불집회를 주최하는 1500여개 시민단체 연대체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에 따르면 1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8차 촛불집회 참가 연인원은 65만명이다.
부산 5만명, 광주 3만명 등 지방 촛불집회까지 합하면 이날 전국에서 촛불을 든 시민 수는 77만1750명에 달한다.
‘비선실세’ 최순실(60)씨의 국정농단 파문이 본격 불거진 후 열린 주말 촛불집회에서 전국 연인원 수가 100만명을 넘지 못한 것은 지난달 19일 4차 촛불집회 이후 처음이다. 당시엔 전국에서 95만명(서울 60만, 지방 35만)이 거리로 나왔다.
이 때는 박근혜 대통령 측이 검찰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후 처음 열린 3차 집회에서 서울에서만 100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후 ‘숨고르기’에 들어간 시기였다.
이후 촛불집회는 5차에서 전국 190만명(서울 150만, 지방 40만), 6차 232만명(서울 170만, 지방 62만), 7차 104만명(서울 80만, 지방 24만)으로 최소 ‘100만 촛불’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이날 100만명을 밑돈 서울 65만, 전국 77만이 참석한 8차 촛불집회 규모를 두고 국민들의 열기가 ‘식었다’고는 말하기는 힘들다.
한겨울 추운 날씨와 8차례에 걸쳐 매주 이어진 집회 피로감, 탄핵안 가결 후 처음도 아닌 두번째 주말이라는 특징을 고려하면 오히려 국민들의 분노가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퇴진행동 관계자는 이날 “참가자 수를 예상해놓진 않지만 날씨, 피로감 등을 고려했을 때 8차 촛불집회 규모는 상당히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박 대통령의 ‘답변서’가 한때나마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는 ‘집회 엔진’마저 달궈놨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 변호인단(이중환·손범규·채명성·서성건)은 지난 16일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에 대한 대통령 측 답변서와 이의서를 제출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탄핵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다”며 “세월호 참사는 불행한 일이지만, 대통령이 인명피해 등과 관련해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후 대중의 반발 여론이 거세졌고, 이날 집회에서는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통령 권한 대행 퇴진, 헌재를 향한 빠른 탄핵 인용 촉구와 함께 박 대통령의 헌재 답변서에 대한 비판이 중심 이슈가 됐다.
광화문 본집회에서 연단에 오른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한다. 일말의 양심도 기대할 수 없는 뻔뻔함의 극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인 단원고(당시 2학년8반) 고(故) 이재욱군의 어머니 홍영미씨는 “박근혜는 거대한 망상에 사로잡혀 탄핵사유가 없다는 답변서를 제출했다”며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고 외쳤다.
6·7차 촛불집회 때 광화문을 찾았었다는 서재석(41·서울 노원구·자영업)씨는 “‘탄핵 이유가 없다’는 답변서를 제출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기가 찼다”며 “사실 오늘은 (집회에) 참가하지 않으려 했는데 하도 어이가 없어서 또 가게 문을 닫고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연인원이 아닌 일시점(오후 7시 기준) 최대인원을 집계하는 경찰은 이날 8차 촛불집회에 최대 6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우익 단체들이 광화문 촐불집회에 앞서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맞불집회를 열었다.
‘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박사모) 등은 이날 오전 11시 헌재 인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 앞에서 ‘헌법수호를 위한 국민 대처’ 집회를 열고 "박 대통령 탄핵은 무효다. 헌재 재판관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보수·우익단체 회원들은 집회 후 오후 1시부터 태극기를 흔들며 청와대 인근 소격동 세움아트스페이스까지 왕복행진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광화문에 미리 와 있던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정부서울청사, 세종문화회관 앞 등에서 맞닥뜨려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잠시 고성이 오고가기도 했지만 다행히 이렇다 할 충돌은 없었다. 경찰은 오후 8시 기준 집회로 인한 연행자는 없다고 밝혔다.이날 경찰은 지난 10일 7차 주말집회 당시와 비슷한 228개 중대 1만8240명을 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