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그동안 ‘편법으로 돈을 긁어 모으는 사(私)금고’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증거가 나왔다.
지난해 9월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한국유치원연합회 회원들이 3000여만원을 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자금은 유치원 경영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입법을 위해 연합회가 제공한 ‘뇌물’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신 의원은 출판기념회가 열리기 5개월 전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그는 자금을 현금으로 은행 대여금고에 보관했다가 검찰에 압수당했다.
신 의원은 “출판기념회 축하금이 과연 대가성 로비 자금이 될 수 있는지 문제는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역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도 장남 집에서 발견된 거액의 뭉칫돈에 대해 “출판기념회 수익금”이라고 했다. 그간 사법당국이 칼을 댄 적이 없는 출판기념회 축하금의 뇌물죄 성립 여부는 검찰 기소와 재판 과정에서 결론이 날 부분이지만 법적 투명성의 사각지대에 있는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폐해는 오래 전부터 심각했다.
정치자금법상 의원은 연간 1억5000만원까지 후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후원금과 달리 출판기념회 축의금은 신고의 의무도 없고 액수도 공개되지 않는다. 책값으로 1만원을 내든, 1억원을 내든 문제되지 않는다. 액수도 받은 사람과 준 사람만 안다경조사비와 같다. 그런데 경조사는 원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그에 비해 출판기념회는 편의적이다. 아무 때나 책을 출간만 하면 열 수 있다. 일종의 ‘묻지마 후원회’인 셈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치인 출판기념회가 공공기관이 대상인 국정감사나 정기국회 전후로 열리는 이유가 딴 데 있지 않다. 관련 기관이나 업계의 로비 창구가 되고 있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초ㆍ재선 의원은 억대, 알짜 상임위 소속 의원이나 중진 의원은 10억원대 수익을 올린다는 말이 파다하다.
보험용, 로비용이 아니고서야 고작 1만~2만원 하는 책값에 수십만~수백만원씩 내놓을 일이 없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아무런 규제 없이 이런 수상한 자금이 쌓이는 출판기념회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여야는 개선을 공약했으나 허언(虛言)으로 그쳤다.
새누리당은 지난 1월 횟수와 참석자를 제한하는 준칙의 검토안을 공개했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2월 수입·지출의 선관위 신고 등을 담은 ‘국회의원윤리실천특별법’을 당론으로 발의했으나 더 이상 진척이 없다.
만약 의원들의 은행 대여금고를 모두 압수해서 조사한다면 신 의원의 경우처럼 현금 다발이 나오는 사례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중 상당 부분은 출판기념회 수입일 가능성도 있다.
출판기념회가 단순히 편법적인 정치자금 조달 창구만이 아니라 입법로비 창구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이상 정치권이 사법적 판단만 기다린 채 뒷짐을 지고 있을 일이 아니다.
정치자금법과 연동해 출판기념회 수익금 신고ㆍ공개 의무화 등 보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