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로 열흘이나 묶여 있었던 터라 몸이 근질근질하여 훌쩍 날아가고 싶은 심정….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다. 바야흐로 객관(客官)을 떠날 시간이 닥치고 보니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연암 박지원 선생의 이 문장에서 내게 와 닿은 건 ‘장마’와 ‘객관’, 그리고 ‘몸이 근질근질하여’다. 정말이지 쓸쓸한 객관에서 맞는 지루한 우기(雨期) 같은 나날의 연속이다. 그래서일 게다. 그리운 이와의 즐겁던 날이 회억되듯 책을 읽던 순간들이 불쑥 불쑥 떠올랐다.
가방에 넣고 다니기엔 다소 무리였다.
그런데도 그 해 여름 내내 몇 가지 상비화장품들을 포기하며 두껍고 넓은 장정의 열하일기를 챙겨 넣고 다녔다.
이른바 독서상우(讀書尙友) 경지다.
유럽 어느 카페촌에는 테이블이 단 하나 뿐인 가게가 있다지 않던가. 그 곳에서 둘 만의 특별한 브런치를 즐기는 맛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이 또한 책을 읽는 자의 자유려니 책을 읽는 그 시간만큼은 땡볕 내리 쬐는 열하(熱河)의 여정을 연암 선생과 나, 우리 두 사람의 호젓한 동행기로 삼아 보자는 욕심도 작용했으리라.
붐비는 버스 속이든지 사람들을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이면 연암 선생을 청한다. 굳이 번거로운 예를 갖출 필요도 없지만 나는 다소곳하고 정중한 마음다짐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책을 펼친다.
‘말은 자주색 갈기에 흰 정수리, 날씬한 정강이에 높은 발굽, 뾰족한 허리에 두 귀가 쫑긋한 폼이 만 리를 달릴 듯싶다’
이 대목을 읽노라면 눈부시게 활기 찬 건마(健馬)가 내 앞에 우뚝 서 있고 어느새 나는 한 마리의 책벌레가 된다.
한 줄, 한 줄 음미하며 읽는 글귀의 매력, 이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오묘하고 깊은 맛을 지닌 명장(明匠)의 과자를 아껴가며 먹는 느낌에 성직자 신분임에도 걸핏하면 책 도적질을 일삼았다는 책 애장가의 일화처럼 나 또한 할 수만 있다면 책 속의 문장들을 모조리 훔치고도 싶어진다.
나는 나를 옭아매는 이 지리멸렬하고 번잡한 일상에서 비껴나기 위해 책갈피 속에 숨어드는 서충이 되는가. 어쨌든 책 속의 낯선 낱말들이 주는 경이감이라니! 오늘은 구첩(口妾)이다.
열하의 폭염과 변덕스런 날씨에 지친 나그네들이 객기를 달래는 한 방법이란다.
오다가다 마주치는 여인들을 입으로나마 잠시 취해 보는 것. 거기에도 엄격한 룰이 있다.
누군가 먼저 선택을 하면, 그러니까 상대는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 말로만 은근슬쩍 안아보는 찰나의 인연일지라도 다른 사람은 절대로 범접하거나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나는 다시 ‘행와(行窩)’라는 낱말에 빠져든다. ‘애초 계획을 가지고 열 두 행와를 지은 건 아니다.’라는 문장 속 행와는 요즘 말로 바꾸면 별장이다.
어느 이를 너무도 흠모한 나머지 자신의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그가 다녀가길 바라는 마음에 그가 좋아할만한 취향으로 집을 짓고 정성을 다하여 꾸며놓는다. 그리고 학수고대 그가 방문하기를 기다린다는, 참 벗을 기리는 예우의 극치를 뜻하는 말이다.
나도 이윽고 옛 사람이 될 터, 이렇듯 남발한 내 글 중 단 한 조각이라도 남아 훗사람의 시공(時空)을 뛰어넘는 정인(情人)이 될 수 있을까. 책 이파리 뒷 그늘에서 찾아 온 졸음 끝 허황한 서충의 꿈도 감히 꾸어 본다.
비록 직접 대면해 만날 순 없지만 머리맡에 두고 영원히 만나보는 가연(佳緣)이 저자(著者)와의 만남이려니 습관이야말로 사랑의 모독이라고 했다.
어느 이 명작을 읽은 후 그 감동의 여파로 한 동안 다른 책을 읽지 않겠다 선언했다던가.
폭염과 장마가 어찌 열하에 비할까만 내 마음 속 번갈아가며 치솟는 열기와 음울한 습기의 기세를 그 누가 짐작할까. 책과의 거리가 여전히 아득해 더더욱 견디기 힘든 하절(夏節)이다.
김 현 임
작가·문화해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