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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보(朗報)와 낭패(狼狽)에 대하여
작성 : 2014년 07월 08일(화) 15:58 가+가-
그야말로 즐거운 소식, 낭보였다. 최근 한국고전번역원이 주최한 아동 청소년을 위한 고전번역 원고에 내 작품이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천만 원을 웃도는 적지 않은 상금도 그렇지만 눈물이 찔끔거려지게 나를 감동시켰던 담당자를 통해 듣는 과찬 일색의 심사평이었다. 작품을 재해석해 낸 풍부한 어휘력이 놀랍고 특히 갖가지 등장 짐승들에 부여한 작명(作名) 솜씨 또한 뛰어났다는 말씀에 오랫동안 문학계 변방(邊方)을 떠돌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씻겼다고나 할까.
넘어져 좌절하기 몇 번이었던가. 그럴 때마다 십 수 년 전, 졸작 한 편을 친히 읽어 주심도 황송한데 ‘우리 수필계의 혜성이…’라는 호평을 해주셨던 ‘갑사(甲寺)가는 길’의 수필계의 거봉(巨峰) 이상보 선생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남의 병으로 밥을 먹고사는 의사가 되기 싫고, 남의 죄로 밥을 먹고사는 목사가 되기 싫고, 그렇다고 남의 싸움거리로 밥을 먹고사는 변호사도 싫습니다. 그러니 작가가 되는 것 말고 달리 무슨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에 시달리던 너세니얼 호손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 구절이다.
“이야기책을 쓰는 작가라고? 도대체 어떤 식으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며 자기 당대와 차세대에서 인류에게 공헌한단 말인가? 차라리 그 퇴보한 녀석은 바이올린을 켜는 풍각쟁이나 되는 쪽이 낫지 않을까.”
이런 질책도 빗발쳤다.
하고많은 직업 가운데에서 하필 작가가 된 것에 대하여 선조들에게 언제나 죄책감 비슷한 것을 지니고 있던 호손. 그는 작가도 훌륭한 직업이라는 것을 당당히 보여주고 싶어 긴 세월 글에 매진했다. 그리고 ‘주홍글씨’라는 소설의 승패에 매달렸다.
미술관, 음악회를 하염없이 기웃거리던 단발머리 소녀는 제가 갈망하던 꿈 조각들에 대한 아쉬움을 한 줄 한 줄 제 빨간색 수첩에 기록했다, 그러는 사이 꿈은 굳어졌다. 할 수만 있다면 글로 내 생계를 책임지고도 싶었다.
그러자면 명실상부(名實相符)한 문학가의 이름도 얻어야 했다. 이런저런 현상응모(懸賞應募)에 매달려 얻은 시퍼런 지폐다발도 적지 않았고 크고 작은 상들도 적지 않게 받았지만 명분 있는 일자리에서는 번번이 퇴짜였다.
무엇보다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여고졸업이라는 최종학력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남의 글을 대필해 주거나, 이리저리 불려 다니면서 종일 두툼한 초고들과 씨름하며 교정과 수정을 해주는, 그 정도에서 만족해야했다.
도대체 닿을 수나 있는 것일까. 꿈과의 거리는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사람의 힘으로 장미를 키울 수 있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사람이 담당할 몫은 흙을 준비하는 일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던가. 장미는 제 안에 있는 힘으로 자라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고 했다.
사물의 이면에는 반드시 깊숙이 감춰진 무언가가 있다는 말도 진리였다. 이리 낭(狼)에 이리 패(狽)가 낭패다. 사육사가 던져 준 먹이 감을 앞에 두고도 좀체 눈길 주지 않던 짐승이 이리였다.
종일 우리를 서성이며 야생을 향한 그리움 가득한 시선을 거두지 않던 녀석. 그 끊임없이 서성거리던 어지럽고 수선스러운 발걸음을 빗대 나온 말이 큰 실패를 뜻하는 낭패다. 고개를 끄덕인다. 무언가에 동분서주(東奔西走), 남의 눈엔 실패의 연속으로 보였을 나의 문학행보에 날아든 뜻밖의 낭보다. ‘밝다. 맑게 환하다. 유쾌하고 활달하다.’ 새삼 찾는 낭보(朗報)의 어원이다.
위대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위대한 시작’이 있다 했다. 새로운 경험, 만남, 새로운 발견…. 그 한 번의 짧은 순간이 그 사람의 일생에 새로운 꿈을 안겨주는 ‘위대한 시작’이 된다.
숨겨진 재능이 빛을 내기 시작하고 새로운 자신감과 도전이 시작되는 계기다.
‘무어별(無語別)’이라는 한시(漢詩)가 교류의 시작이었다. 내가 그토록 접하고 싶던 고전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백호 임제 선생님과의 운명 같은 만남도 예사롭지 않다. 최근 너무 아깝게 세상을 떠나신 이윤기 선생님의 ‘그리스 로마 신화’도 내겐 무언의 가르침이었다.
어쨌든 고전번역이라는 좀 어려운 부문에서 인정을 받았음이 기쁘고 기쁘다. 계약서, 인세 등등의 단어들도 내겐 황홀하다.
시상식은 생략하고 원장님과 식사자리로 대신하겠다는 자리에 나서는 발걸음은 더 이상 이리저리 헤매는 낭패가 아닌 즐거운 걸음, 낭보(朗步)려니 이젠 직진(直進)이다!


김 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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