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중국동포사랑방문단의 백두산 등정
작성 : 2014년 06월 22일(일) 15:55 가+가-
필자는 지난 15일(일)부터 21일(토)까지 6박 7일간의 일정으로 문화를 통한 동포사랑운동을 펼치는 제 36차 중국동포사랑방문단과 함께 연변조선족자치주 일대를 다녀왔다.
이번 중국방문은 지난 1991년 한·중 수교 이전부터 24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년에 1~2차례씩 계속되어온 동포사랑운동차원에서의 36회 공식일정이었지만 필자개인의 방중실적은 63회 차이기도 하다.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눈에 보이는 거리나 환경도 변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의식도 변하고 있었다.
특히 우리 동포들의 집거지인 동북삼성(길림성·흑룡강성·요녕성)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면서 대다수의 재중동포들이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중국의 도회지나 한국으로 돈을 벌기위해 이동하는 바람에 농촌공동화현상이 심화되고 있었다.
중국동포사랑방문단은 그동안 독립투사 유가족들을 돌보는 일과 자라나는 동포후대들에게 민족정체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각종 문학상 제정 후원과 한국의 교양도서 지원 및 장학금지원 사업을 펼쳐왔다.
한편으로는 우리글과 우리말의 보존과 발전에 힘을 실어주기위해 중국 현지에서 한글로 작품 활동을 하는 동포 작가들의 저서 펴내주기 운동도 병행하면서 이들에게 긍지와 격려를 해주기 위해 중국조선족소년보사 림 철 주임의 동시집 ‘아기 풀과 아기 꽃’의 출판기념회를 갖기도 했다. 또한 자라나는 동포 후대들 가운데 한국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과 장학금을 지원하는 일도 병행해오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그동안 지원해 온 동포 후대들만 해도 500여명 이상이 된다. 이번 중국 방문에서 특별히 잊어지지 않는 기억은 길림성 도문시 월청진에 소재한 백년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두만강을 끼고 북한과 지척의 거리에서 마주한 자연부락으로 현재 주민들이라고 해봐야 수 십 명에 불과했다. 이곳 역시 젊은이들은 모두 한국이나 중국의 도회지로 돈벌러나가고 나이 든 노인들만 오순도순 모여 사는 마을이다.
그러나 이 마을을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탄 마을사람들은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한 150여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고유의 기와집을 민속자원으로 보존하고 이 마을 앞에 최근 새롭게 민속품 전시관을 지어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오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우리일행이 이곳을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고 마을촌장을 위시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인절미 떡을 떡메로 치고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는 정겨움을 통해 민족동질성을 확인시켜주었다. 이곳에는 한국에서 기증받아온 한복을 다량 구비하여 관광객들에게 옛 추억과 함께 조선민족의 풍속을 체험할 수 있도록 비치해두어 잊혀져가고 사라져가는 우리 민족의 전통과 민속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노력이 역력했다.
이곳에 비치된 한복은 해외동포두리두리사랑회 중국 총무를 맡으며 도문시에서 글짓기를 지도하고 있는 도문 제2소학교 고급교원 출신인 아동문학가 허송절 선생의 수고가 컸다. 북한의 함경북도 남양시와 작은 개울하나를 경계로 국경을 대신하는 도문시는 우리나라 강원도 동해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오랫동안 문화교류 및 인적교류를 해오고 있다.
이 일을 위해서도 민간인으로서 허송절 선생의 공이 크다. 우리일행은 마지막 날 우리민족의 영산으로 불리는 백두산 국립공원을 연변조선족 자치주에서 관리해오던 권한을 길림성으로 이관시키더니 막대한 자본을 들여 새롭게 단장을 하고 인산인해를 이루는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제까지 사용하던 서쪽 정문을 폐쇄하고 새롭게 건설한 북쪽에 정문을 만들어 입장료와 셔틀 버스료, 그리고 주봉에 오르는 교통비 등을 대폭 인상해 관광객들을 맞고 있었다. 남북의 분단에 대한 슬픔이 백두산 정상에 오르니 천지의 푸르른 문을 내려다보며 또 다시 기억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중국동포들과 북한의 동포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김 철 수

아동문학가
美솔로몬대학교한국학장
편집팀 기사 더보기

tdh1234@naver.com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