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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작성 : 2014년 06월 17일(화) 16:51 가+가-
꽃을 받았다.
출근길 바래다주고 손 흔들며 돌아선 사람이 되돌아와 불쑥 내민 붉은 장미, 아니 붉다 못해 검붉기까지 한 흑장미 한 송이의 황홀한 매력! 흰 도기(陶器)에 꽂아두고 만끽하던 유월 입구의 즐거움은 여전한데 목하 장미의 계절도 어느덧 중순을 넘어섰다.
어느 꽃이건 내 집에선 스무날쯤 늦었다. 거리 곳곳에 갖가지 수종의 장미가 만개해 시들어갈 무렵에야 드디어 내 집 마당의 장미가 개화를 시작했다.
서머 레이디(Summer Lady)인가, 참 오브 파리(Charm of Paris)인가. 아님 퀸 엘리자베스(Queen Elisabeth)인가. 머리맡에 놓인 원예책자를 뒤적이며 분홍빛깔 장미 종(種)의 이름들을 읊조린다.
마당에 설 때마다 벙싯거리는 분홍장미 덕택일까.
‘당신에게는 꽃내음이 나네요.’라던 노래와 함께 며칠째 ‘장미’라는 향 짙은 화명(花名)이 내 머릿속을 휘돌며 내 삶의 장미꽃 같은 것들을 꼽아보게 한다.
어디선가 들리는 클래식 선율이다.
이웃인 운강선생께서 종일 틀어놓으신 FM이리라. 한 송이 꽃을 보면 우울하던 마음이 금세 가시는 것처럼 내게 있어 음악이 그러했다. 선율이라는 수반에 꽂혀있는 한 떨기의 꽃과 같은 음악은 들어도, 들어도 아쉽기만 했다.
그러니 ‘음악을 좋아하지만 주머니가 가볍다면 이 축제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문구의 유혹이 무도회의 초대권처럼 달콤하지 않으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주역인 소프라노 신영옥, 그 오페라단의 최고참 소프라노 홍혜경, 이런 유명 성악가들의 콘서트가 무료란다.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울게 하소서’, 벨라니의 ‘청교도’ 중 ‘나는 사랑스러운 처녀’라는 제목만으로도 내 가슴은 뛴다.
건반 위의 구도자라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헝가리 국립필하모닉과 협연하는 콘서트가 단돈 1만원에서 5만원이라니 후! 터지는 한숨이다.
하지만 내 참석 여부와 상관없이 그 뜨락의 정경은 실로 아름다울 터, 적지 않은 돈을 과감히 투자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의 정원을 조성한 것은 수원시였다.
내게 있어 또 하나의 장미원(薔薇園)은 문학이다. 십 수 년 전 어느 출판사의 현상공모 시상식장에서 만나 뵙고 함께 사진을 찍었던 인연 때문인가. ‘문학관이라고는 하지만 문학만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조선 후기 보부상들의 생활이나 상업사(商業史)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기 때문에 역사학도와 경제학도도 많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라는 소설가 김주영 선생의 개관의 변(辯)이 반갑다.
‘객주’라는 소설을 쓸 때 참고한 지도와 문서, 육필 원고가 놓인 전시관에는 작품의 소재가 된 보부상들의 생활을 재현한 조형물과 그들이 사용한 지게와 저울 등등을 함께 진열해 두었단다. 그곳이 자신 만의 공간이길 사양하며 모두가 공유하는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는 문학관 주인의 열린 소망이 흐뭇한 넝쿨장미 정원이다.
장미라고 그저 곱기만 하던가.
가시 없는 장미는 없다. ‘배우(俳優)는 동류(同類)의 고등동물인 사람의 감정을 휘어잡는 사냥꾼’이라며 후배 연극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노배우의 일갈이야말로 매서운 가시다.
긴 군부독재가 막을 내리고 모든 예술분야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첫 개관하는 연극 공연장에 현직 대통령이 관람을 오시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철학이 없는 시대에 그나마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곳이 무대라는 자부심 하나로 똘똘 뭉쳤지만 예나 지금이나 열악한 처지의 연극인들로선 더없는 영광이 아닌가.
그런데 대통령은 다음 스케줄을 이유로 공연 도중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 수 없이 배우들은 모두 현관으로 나가 대통령을 배웅해야 했단다. 최근 펴낸 에세이에 그 시절을 회억하며 ‘중간에 나가려면 애당초 오지 않았던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장미원지기 노익장의 지적이 따끔하다.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고운 향 떨치는 장미원만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저런 류의 쓰레기 더미에서 풍기는 악취들에 시달리기 한 두 번이었나.
우리로 하여금 코를 싸쥐게 하는 부패균(腐敗菌)들의 배양실도 적지 않았음이다.
그럴수록 아쉬워지는 삶의 꽃향기, 음악과 문학과 연극의 정원을 소요하며 장미의 꽃말인 사랑에 취해 살 수는 없을까. 그가 준 장미는 몇몇 사람들의 찬탄 속에 이내 시들고 말았지만 아직도 그 향기만은 내게 남아있다.



김 현 임

작가·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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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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