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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안의 새
작성 : 2014년 06월 10일(화) 16:47 가+가-
남편이 잔뜩 화가 났다. 모처럼 쉬는 날 가져온, 그것도 번번이 가져오는 아내의 일거리 때문이다. 휴일만큼은 뒹굴뒹굴 거리던가, 환호작약 중인 마당의 꽃밭을 소요하며 함께이길 바라는 마음을 난들 왜 모를까. 종일 풀지 않은 굳은 표정에 내 쪽에서도 은근히 서운해졌다.
꼭 돈 때문이 아닌, 참으로 내가 좋아하며 내게 어울리는 일을 갖고 싶었다.
여고를 졸업하자마자 열아홉 단발머리로 근무하던 사업소의 말단 여직원, 아니 말이 여직원이지 청소와 담배 심부름, 은행 심부름이 주 업무였던 사무보조원은 훌쩍 건너뛰자. 우연히 얻은 클래식 음악 DJ는 신이 났다. 숙식을 제공하고 보수가 만 몇 천원이었던가. 변변한 로션 하나 살 처지가 못 되는 박봉도 그렇지만 숙소에서 뮤직 박스로 이어지는 나날. 단 한 시도 자유가 없는 얽매임이 스물한 살 내겐 더 고역이었을 게다.
그리고 또 건너, 건너 뛰어 삼십 중반에 얻은 초등학교 글짓기 선생님!! 내 생애 가장 즐거운 날들의 페이지였다. 그러나 또 함정이 있었다. 단 한 마디 통고도 없이 걸핏하면 교실을 옮기는 통에 분실한 교재가 한 둘이었나. 싸늘하고 매사 고압적이던 교감선생의 눈초리라니.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본디 사람대접하기 좋아하는 성품인 내겐 딱 안성맞춤.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찻집’, 요새 들어 그 꿈을 날마다 꾼다. 한국 전통차, 마르코 폴로라는 향 멋진 홍차, 빛깔 고운 오미자에 대추차 고는 것까지 열심히 요령을 터득하는 중이니 욕심에 좀 무리수를 두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루기까지엔 그런 과정이야 필수 아닌가. 그걸 이해 못해주나. 결국 재료구입 협조 불가라는 선언에 한 시간 간격 시골버스를 기다려 타고 땡볕에 터덜터덜 걸어 장에 갔다 오는 길, 문득 떠오른 게 ‘새장 안의 새’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라는 자전적 소설로 유명한 마야 안젤루가 86세를 일기로 지난 5월 28일 타계했다.
TV시리즈 ‘뿌리’의 할머니 역으로 에미상을 수상하고 클린턴 전 대통령 취임식 때 ‘아침의 고동(鼓動)에’라는 헌시를 낭송하기도 한 흑인여성들의 우상이다. 작가, 시인, 가수, 배우, 인권운동가, 교수라는 화려한 이력…. 그러나 그녀의 전력(前歷)엔 튀김집 종업원, 클럽 가수에 스트립 댄서였고 10대 미혼모 시절엔 생계 때문에 몸을 팔기도 하였던 아픈 기록도 새겨져 있다. 그녀는 어떤 역경에서도 굴하지 않는 희망의 화신으로 변신했다.
세살 무렵 경비원이던 아버지와 카지노 딜러였던 어머니가 이혼했다.
줄곧 할머니 손에 자라다 겨우 8살 때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실어증에 빠졌다. 5년 간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던 소녀를 보다 못한 동네 아줌마가 도서관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읽었단다.
그것이 훗날 그녀 문학의 귀한 자양분이 되리라는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17세 때 출산을 하며 훨씬 더 심각한 고비를 맞았다. 생계를 위해 간이숙박소에서 일하며 몸까지 팔아야 했던 것이다. 백인남자와 결혼했으나 이혼 후 춤을 배워 나이트클럽과 스트립쇼 극장을 전전하던 그녀가 인권운동을 하며 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비로소 눈 뜨게 된 자존(自尊)이다. 친구의 권유로 낸 자전적 소설 ‘새장 안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가 크게 히트했다. 흑인여성 작가 최초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이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며 50여 개의 명예 박사학위를 받는다. 불우한 환경 출신의 흑인 소녀가 자신이 즐겨 표현하던 ‘she-ro’ 즉, 영웅 hero의 여성형이니 명실상부 여자 영웅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충고했다. ‘양쪽 손 모두 캐처 글러브를 끼고 살면 안 된다. 뭔가를 되던져 줘야 한다. 누군가의 먹구름 속 무지개가 되라. 변화하려면 내 마음 한가운데 불도저로 길을 내야 한다.’ 그리고 ‘인생은 숨 쉬는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장도로 벅찬 순간들의 숫자로 매겨진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어떤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긴 했다. 생의 기로에서 자의 반 타의 반 망설일 틈도 없이 쫓기어 덥석덥석 밟은 내 발자취가 새삼 부끄럽진 않다. 그렇지만 통감한다. 바로 이것이 내 것이다 싶을 때까지 기다려라. 그 세월이 몇 년이든 묵묵히 참아내라는 그 말을. 다만 그 실천의 과정이 쉽지 않다. 여전히 퉁퉁 부은 얼굴로 놀아주지 않는 누이에게 골 난 어린 소년 같은 짝꿍. 하지만 이런 과정도 훗날 웃으며 얘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뿔 난 짝꿍을 달래는 데는 한 잔 술이 최고인데, 때마침 영모정 그늘 바람이 꽤 좋다.



김 현 임

작가·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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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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