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똥!”
하필 무언가로 한창 바쁜 시간이면 울리는 문자메시지 알람이다. 누군가로부터 보내지는 긴급한 연락이 아닐까? 하지만 열자마자 노란 화면 속 반갑잖은 글귀와 마주친다,
‘안녕하십니까? 기호 몇 번…’
기다린 적 없는 이런 장문의 편지에 매번 속으면서도 손에 묻은 비눗기나 고춧가루 등속들도 못 닦은 채 확인을 하곤 한다.
받아두고 벼르고만 있던 문학동인지를 펼쳤다. 이 고장의 명문여고 출신 문인들이 수업 시간 창 너머로 보이던 교정의 정원수를 모임 명(名)으로 빌려 발간했다고 했다. 책의 표제가 된 히말라야 시더의 학명(學名), 속명(俗名)까지 정성스레 밝혀놓았다.
이 책을 출발로 동문들의 문학의 숲이 울창해지기를 바란다는 화합 취지에 걸맞게 운송(雲松), 향백(香柏)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는 소나무 과(科)의 수종. 덧붙인 ‘희조랍아삼(喜鳥拉雅杉)’을 나무의 고운 향기에 새가 즐거이 머물러있다는 뜻이려니 짐작하며 나 또한 본격적으로 책의 아름다운 그늘로 숨어들어 볼까하던 순간, 또 다시 울리는 띵똥! 하여 책의 첫 페이지도 펼치기도 전 독서의 흥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바깥이 왁자하다. 선거꾼들의 공세가 날이 갈수록 요란하다. 며칠 전부터는 확성기까지 동원해 지지하는 후보의 홍보에 열을 올린다. 너나없이 굽신, 굽신이다. 저 허리가 뽑아주고 나면 언제 그랬냐, 대다수 뒤로 발딱 잦혀지겠지. 지극히 겸손한 후보들의 얼굴도 위상격상(位相格上)을 위한 선거치레용 가장(假裝)이었다. 진정한 목민(牧民)이란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 돌보는데 힘쓰라는 다산 선생의 충고, 그것만 잘 실천하는 후보라면 한 치 망설임 없이 붉은 도장을 딱 찍어 줄 텐데. 흡사 떠들썩한 고물장수 확성기 소리에 진배없다. 지저분한 묵은 살림을 치워주는 것도 고마운데 덤으로 몇 장 비누까지 안겨 주던 장사치의 보답은 커녕, 임기동안 허겁지겁 제 뱃속 채우기에 급급한 정치꾼들도 적지 않았다.
치열한 밥그릇 싸움이다. 50년 지기(知己)의 고교동문들이 도지사 후보 과열경쟁으로 검찰 고발까지 번졌다. 제각각 상대를 향해 허위사실 유포다, 상대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사실 무근한 말들을 퍼트리고 있다며 최악의 비수(匕首)인 법정 다툼까지 불사한 것이다. 동창생들만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 두 번째 도시를 쥐락펴락할 시장선거에 나선 인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네거티브 폭로전이 뜨겁다 못해 폭발 수위에 다다랐다. 박사논문이 표절이니 당장 후보직을 사퇴하라는 경쟁 후보의 압력에 대꾸할 가치도 없는 흑색선전이라고 맞받아치며 그 쪽이야말로 원전비리 사건의 장본인이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뻐꾸기 울음 든 산그늘도 드는 산빛
그 절구(絶句) 내처 듣다 그만 마음이 빠져
내 안에 둥지 틀었다
저 뻐꾸기 듣도록
팽팽히 길어 올린 한 동이 쑥빛 울음
골짜기 긴 골짜기에 뻑 뻐꾹 뻐꾹 뻐꾹
울음에 울음을 치대
차지게도 구성져
깊은 계곡 쏟아지는 속이 다 부신 물처럼
뻐꾸기는 울 줄 안다 울음 울 줄 안다
녹음에 헹군 울음 한 쪽
뙤약볕에 내걸 줄 안다
김동호 시인의 이 시를 소개한 시인은 같이 울어주는 마음만큼 큰 위안도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제 새끼 남의 둥지에 맡기고 만화방창(萬化方暢)의 호(好)시절인 봄이 간다고 하염없이 울어대던 뻐꾸기 소리도 예사롭지 않았던 요즘이다. 운송(雲松), 향백(香柏)의 향기 지닌, 큰 나무 닮은 듬직한 인걸(人傑)이 그립다. 나무의 울창한 가지에 사로잡혀 종일 노래를 부르는 새소리는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건만 선거철 유언비어처럼 떠도는 말, 말들의 난무에 골머리가 지끈거린다.
김 현 임 작가·문화해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