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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선생(雲岡先生)
작성 : 2014년 01월 21일(화) 18:13 가+가-
김현임

머리맡에 놓아두고 읽을 만한 책이 생겨서 반갑다. 어린 아이가 연신 조물락대는, 채 입에 넣기도 전 입 안 가득 달콤한 침이 고이게 하는 사탕봉지의 느낌이랄까. 운강선생에게 얻은 연우회 서예전의 팸플릿이다. 특히 고봉 기대승선생의 주옥같은 시문만을 화선지에 옮겼으니 더더욱 귀하게 읽힌다.
얼마 전인가. 호랑이를 소재로 한 글을 쓰다가 궁금해졌다. 내 집 벽에 십 년 넘게 걸려있었지만 포효하는 호랑이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액자 속 문구였다. 더듬더듬 큰 머리와 발(面頭巨足), 강건한 이마와 부릅뜬 눈(形?壯瞋目)... , 여기까지 간신히 해석하다가 긴 長 자 뒤의 흐릿한 글자 ‘髥’에 딱 막혔다. 이웃으로 온 지 몇 달이 지나도록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상호 맞대면의 인사조차 없어 데면데면. 여전히 서먹한 사이였던 새집 아저씨가 전각(篆刻)을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결국 옥편을 동원해도 풀리지 않던 엉킨 수염 같던 글자인 ‘구레나룻 수염’을 뜻하는 ‘염’ 자는 그 분 덕택에 시원히 풀렸다. 그 후 얼마지 않아 운강선생 댁에서 접시 가득한 떡과 자색 고구마가 전해졌고 나는 답례 삼아 풀꽃 한 촉 전해 드렸던가. 어쨌든 그를 기회 삼아 우리 두 집은 가까워졌다.
시골생활의 가장 힘든 점은 말 나눌 벗의 부재다. 구름, 바람, 꽃과 달, 하다못해 오지항아리 따위 같은 침묵 일관의 것들과 별 불편 없이 지내다가도 가끔 이는 변덕이었다. 소리가 아쉬워 대 여섯 마리의 개들을 얼러보지만 고작해야 ‘컹컹’ 응답할 뿐인, 해득불가의 소음을 상대하기에도 한계점에 다다른다. 견딜 수 없이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다. 종로의 인사동, 비록 소란스러운 저잣거리 곁에 집을 짓고 살면서도 강호(江湖)에 은거(隱居)한 고요의 경지를 추구하던 분이 이덕무 선생이다. 하지만 강변마을의 호젓함은 외려 시장통의 떠들썩함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래서다. 전원(田園)의 강변에선 유난히 예민해지는 게 귀다. 혹 누군가의 기척이 들리면 얼굴에 일순 화색이 돈다고나 할까. 하긴 내 집 향한 발걸음이라고 반가워 달려 나가는 것도 잠깐이다. 집터는 백만 원을 주고 사되 이웃은 천만 원을 주고 사라던, 백만매택(百萬買宅)이요, 천만매린(千萬買隣)은 진리였다.
대다수 내가 베푼 음식 무게를 훨씬 웃도는 흉더미를 들고 나가기 일쑤였다. 소금 팔러나갔다가 소나기 만난다던가. 서로 바빠 눈 마주치기도 힘든 농번기엔 그렇다 치더라도 방이 좁을 새라 모여 콩고물 묻힌 쑥떡과 더불어 쑥덕공론도 함께 나누는 게 농한기 시골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그 정 뚝뚝 돋는 화합의 자리에 번번이 불참하는 것도 못마땅했을 것이다. 종일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으며 자신들의 눈엔 전혀 환금성(換金性)없는 글 나부랭이를 끄적거리는 여자도, 더구나 최근 내가 겪은 우여곡절의 실패담은 그들 눈엔 더할 수 없이 신기했을까. 그들은 밭 매는 솜씨만큼 빠른 입놀림으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화제로 삼는 눈치다.
‘계해년(명종18, 1563) 원기가 다시 운을 써서 보내주어 용문과 함께 화답하고 드디어 왕복하였다.’는 운강선생의 이번 글제도, 시 속 면면히 흐르는 옛 선비님들의 그윽한 우정도 반갑다. 긴 세월 내가 학수고대 마지않던 이웃의 기대감일까. ‘우연히 아름다운 의표 접하였고...’라는 글귀 대목엔 가슴까지 울컥하였다. ‘가난해서 반 꿰미의 돈도 저축 못하면서 천하의 가난하고 춥고 병들고 고통 받는 자에게 베풀고자 한다. 둔해서 책 한 권 꿰뚫어보지 못하면서 만고의 경전을 사서 총서와 패서를 보고자 한다. 뜻이 큰 자 아니라면 바보다.’라고 한탄하셨지만 이웃에 당신을 지음(知音)해 주시는 벗 박제가 선생이 계셨다는 기꺼움을 글로 남기셨던 무관(懋官) 이덕무 선생. 이제라도 그 경지를 흉내라도 내 볼까. 모쪼록 운강(雲岡), 구름언덕 선생과 좋은 인연을 잘 꾸려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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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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