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임
화면 속 소년은 기타를 치고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연주에 도취한 셀프 카메라 영상을 친구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여린 체격의 그가 잔혹한 사건현장에서 닳고 닳은 형사들조차 경악할 정도의 엽기적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 되었다. 애초 기타를 매고 들어간 모텔에서 소녀를 불러들인 소년은 몇 시간 후 기타 대신 무참하게 난자한 소녀의 시신을 검은 봉투에 싸서 들고 나왔다. ‘당신에겐 그 어떤 원한도 없다. 그렇다고 당신에게 다정한 감정도 죄책감도 없다.’고 피해자인 17살 소녀를 향해 자신의 트위터에 냉담한 어투의 몇 줄 편지를 남겼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전쟁의 폐허 속에서 죽어간 강아지를 묻어주던 소년 소녀의 영상과 함께 잔잔히 퍼지던 ‘사랑의 로망스’라던가. 기타 연주하면 떠오르던 선율들이 함께 헝클어져 불협화음을 내는 충격에 빠진다.
부모와 함께 미국에서 몇 년간 머물다 귀국한 소년을 주변의 모두는 모범생이었다고 기억했다. 몇 차례나 학력우수상을 받을 만큼 성적도 우수했고 품행도 남달리 방정했던 소년이라 입을 모았다. 그런 아이를 빠져나올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범죄의 나락으로 추락시킨 건 무엇이었을까. 아이는 기타연주자로 살아가길 원했다한다. 하지만 음악도의 길을 반대한 아버지는 소년의 기타를 강제로 빼앗아 소년의 면전에서 박살을 내기 몇 번. 폭압적인 아버지는 제 힘으론 절대로 대항 못할 거대한 완력, 그 자체였을까. 결국 소년은 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했다.
독일의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는 개인의 초상을 통해서 거대한 사회구조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가능할 것이라는 신념 하에 20세기 인간상(像)을 카메라에 담았다. 정치인, 예술가, 학자 뿐 아니라 제빵사 등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담은 방대한 작업이었다. 당시 아리안 우월주의에 경도된 나치의 눈엔 불온하기 짝이 없는 행위로 지목되어 원판은 파기되었고 사진 만이 남았다.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고 긍정하는 태도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신념을 실천하는 힘을 만든다고 했다. 빈부귀천을 떠나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것을 사진으로 예견한 잔더다.
천편일률 의사, 법관... 등등의 푹신한 의자에 앉는 직업만 선호한다면 누가 이 세상을 노래할 가사를 짓고 그에 맞는 음률을 창조하며 그 악보를 연주하겠는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서 삼포 세대라고 하는데, 어차피 힘든 거 그냥 좋아하는 거 하다 힘든 게 낫지 않겠느냐. 좋아하는 일 하다 힘들면 나한테 화내지. 애먼 사람 붙잡고 화내지는 않을 거’라고. 좋아하는 문학을 위해 방학이면 스마트 TV 제조업체에서 밤새 부품 조립하고 학기 중에는 도서관 근로 장학생으로 야경주독(夜耕晝讀)을 택해 뛰었다는 올해 조선일보 신춘을 거머쥔 이십 대의 목소리도 당차다.
제 삶은 결국 제가 걸어가야 한다. 제 길에 대한 자긍심을 잃을 때 모두를 잃는다. 어떻게든 세상에 개입해 제 존재를 드러내는 게 화려한 빛깔 지닌 독초의 욕망만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들의 존재 방식이다. 부서진 기타를 망연히 바라보았을 소년의 절망한 눈이 자꾸 클로즈업된다.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의 길을 막는 횡포가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반항의 역류로 엉긴 피가 자식의 가슴에 은밀히 자라는 독버섯 양산의 우를 범하지 말자. 셀프 카메라 속 화면에서 엿보이듯 자신의 능력을 만인에게 드러내고픈 욕망이 누구보다 컸던 소년. 무대에 올라 기타로 대중의 시선과 갈채를 원하던 소년의 우회적 자기 과시 수단이었다고 치부하기엔 무리다.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소년을 옹호하고픈 마음도 없다. 때마침 진로 결정의 새 학기가 코앞이어선가. 생의 향방, 그 기로에서 선택의 기회 자체마저 박탈당한 소년의 반발이 빚은 그릇된 자기 표현방식이 너무도 가슴 저리고 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