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임
성경책을 챙겨들고 지닌 옷 중 가장 깨끗한 정장을 차려입고 교회로 향하는 가족, 이는 유년의 내가 꿈꾸던 가장 이상적인 일요일의 모습이며 가족상(家族像)이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휴일 저녁이면 바이올린, 피아노 앞이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아버지의 하모니카 반주에 맞춰 조촐한 가족 음악회가 열리는 가정... . 때론 예배처럼 정결하고 때론 음악회처럼 유쾌하게 꾸리리라 벼르던 나의 미래였다.
여고시절 현악반 모집 알림의 광고가 교실 벽에 붙었을 때의 가슴 뜀박질이라니! 밤마다 내 어깨 위에 얹혀 쇄골을 지그시 누르던 작은 악기의 감촉은 상상만으로도 설레었다. 어쨌든 그 꿈은 일언지하 부모님의 거절선고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내 방 가득 울려 퍼지던 음악의 선율만은 멈추지 않았다.
유정이는 내 여고시절 친구다. 어둑신한 음악실에서 유정이가 첼로로 연주해주던 ‘Love is blue’, 제목과는 달리 감미로웠던 폴모리아 악단의 그 곡처럼 우리 생의 행로는 비록 행복하다는 표제를 내걸 수 없었지만 꽤 매력 있는 여정이었다. 유정이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으리라. 어쨌든 오늘 나는 오래오래 바래왔던 주일의 꿈을 실현한 듯 발걸음에 기꺼움이 넘친다.
다문화 M오케스트라 음악회의 초대장을 훑고 또 훑는다. 전국 최초로 조직한 가족단위 오케스트라로서 영문 M은 Multiculture(다문화)의 약자다. 유정이가 주축이 되어 한국 현악기협회의 악기 기증과 광주여성필하모닉 단원들의 음악 나눔 교육봉사 프로젝트의 일환인 재능기부 등을 발판으로 2010년 11월 80여 명의 인원으로 창단되었다. 필리핀, 캄보디아, 태국, 중국, 베트남, 몽골, 남아공, 영국 등등, 도합 17개국의 나이도 성별도 다른 단원들이 화합을 이룬 연주단체다.
광주여성필하모닉의 단장이자 다문화 오케스트라의 수장(首長)이 된 내 자랑스러운 친구 김유정. 한 사람의 참한 발걸음을 곁에서 지켜보는 즐거움은 크다. 예술가의 길이 오죽 험난하던가. 신산하고 적막하기 저 세한도(歲寒圖) 속 소나무에 비할까. 오로지 한 길 묵묵히 걸어가는 유정이의 장한 발걸음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까닭이다.
엘가의 위풍당당한 행진곡,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그리고 클래식 기타 선율로 바하의 ‘환상의폴로네이즈’가 연주되는 사이, 영혼이 말끔히 세척되는 느낌이 이럴까. 켜켜이 쌓여있던 내 속의 먼지 분말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허물찌꺼기들도 흘러내린다. 오만, 편견 같은 낡은 부품들이 빠져나가고 겸손, 감사들의 새 부속들로 교체된다. 음악에 빠진 몰아의 경지 속 내 영혼은 청아해진다. 음악의 영토에선 깃털처럼 가벼워진 나다. 맥코이의 아프리칸 심포니, 둥둥 울리는 타악기의 고동 속에서 드넓은 초원을 누비는 누우나 톰슨가젤의 심장 박동이 들린다. 나 또한 들판의 야생 동물인양 세상의 온갖 구속에서 자유로워진다.
문화를 경제의 논리로만 재단하는 사회의 미래는 어둡다. 감성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세상의 미래는 비극, 그 자체라고 했다. 어려운 형편의 다문화 가정 출신 단원들의 레슨도 무료지만 연주회 티켓도 무료다. 유정이를 비롯해 여성필하모닉 단원 모두 그들이 지닌 가장 소중한 재능을 아낌없이 덜어내 나누어 주었다. 한 장 음악회의 초대장이 내게 베푼 온기를 오래 간직하리라. 한파 매서운 이 겨울, 춥고 헐벗은 내 영혼을 음악이란 따뜻한 질감의 피륙으로 감싸준 연주자들에게 깊은 목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