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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불 지피기
작성 : 2013년 12월 17일(화) 18:23 가+가-
김현임

내 생의 마지막 순간, 누군가 내게 다가와 묻는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머무는 동안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 언제였는가?’고. 어린 남매를 양 옆구리에 찰싹 끼고 누워 비 오는 소리와 섞여 듣던 감미로운 바이올린 선율 감상이 으뜸이었다, 이런 대답을 하려다 나는 잠깐 주저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더라고 성가(成家) 후 어미인 내게서 시큰둥해진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두 아이들이니 내 마음도 좀 그렇긴 했다. 어쨌든 요즘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애걸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포만감으로 느긋하다. 아궁이 앞에서 장작불을 때는 그 순간이 내게 가장 생의 만족도 높은 순간으로 교체되어버린 것일까.
명사들의 옛집을 들르는 문학 기행 때였다. 어인 까닭인지 그 분들의 손때 묻은 원고지나 만년필, 서책들보다는 버릇처럼 눈여겨보게 되던 부엌이었다. 단지 구색용일뿐 재 한 톨 흔적 없는 말끔한 아궁이에 서운해 하며 떠올리던 풍경은 타닥타닥 타는 장작불 앞에서의 차 한 잔이었다. 주로 우리 옛 것을 찾아 시리즈로 발간하는 대원사의 ‘한옥의 고향’이라는 책자를 구해 귀퉁이 닳도록 섭렵한 것도 다 그 까닭이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 사진이 실린 페이지 귀퉁이에 적힌 ‘가다가 온 만큼 추춤추춤 되돌아서는 파도 닮은 삶’이라는, 다시 대하니 매운 연기에 쐰 듯 눈물이 찔끔거려지는 낙서를 끄적일 만큼 세상 어느 것으로도 따뜻한 위무가 되지 않던 헛헛한 시절이기도 했다.
그토록 벼르고 벼르던 구들방을 들였다. 대나무를 쏘시개 삼아 바짝 마른 나무를 얹고 밑불을 피우다가 통나무들을 들여보내면 끝. 활활 타오르는 불꽃 앞에서 진한 커피를 마시며 만끽하는 한가로움에 다른 세상사야 ‘내게는 아무 쓸 데 없다!’ 는 탄성이 배어나온다. 장작더미의 홍송(紅松) 둥치에서 훅 풍기는 나무 향(香)! 이를 세상 어느 이가 지닌 인품의 향기에 비할 것인가. 푸르고 시원한 그늘을 주던 나무들이 내게 베푸는 마지막 은덕(恩德) 누림이 행복하고 행복하다. 넉넉히 타오르는 불꽃 앞에서 박용래 시인의 시집 ‘저녁눈’을 펼쳐 이런 구절들을 골라 읽기도 한다.

‘가을에도 피는 꽃/겨울에도 핀다/할매가 지피고, 돌/이가 지피고, 노을/이 지피는 쇠죽가/마 아궁이, 아궁이/불 지새우는 불티/같은 사랑, 사랑사’

어느덧 나무 타는 소리조차 유순해진 고요 속에서 곰을 빗댄 인디언의 잠언(箴言)도 되새긴다. 충분히 음식을 섭취한 후 곰은 동면에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만을 취한다. 쉬는 동안 곰은 자기 동굴에서 안전하고 따뜻하게 지낸다. 마찬가지로 인디언 부족들도 추위가 오기 전에 겨울을 준비한다. 가축이 있으면 그것을 도살해서 훈제실에 넣어 두고 땔감을 저장한다. 그렇게 해서 겨우살이 준비를 하고 생각할 시간을 맞는다. 지난해를 되돌아보고 다가올 봄의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지 계획을 짜고 친구들, 친척들과 함께 즐기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 시간에 그들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웃음을 나눴다. 모든 것을 잊고 자신들의 몸과 마음을 보충하고 재충전했다. 말하자면 빈 그릇이 되는 것, 한쪽 손을 들어 축복을 받은 후에 다른 손을 열어 그 축복이 다른 이들의 삶 속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봄은 죽은 것들을 다시 보아서 봄이요, 여름은 열매가 많아서 여름이요, 가을은 그동안 고집했던 낡은 생각까지 다시 갈아입는 절기라는 뜻에서 가을이며 겨울은 겨우 살아간다고 겨울이라 했다. 그렇다면 겨우살이를 위한 김장만 끝냈나, 생의 갈무리를 마친 후의 후련함이다. 더구나 뜨끈한 장작불 앞에서 누리는 차 한 잔, 이런 겨울날들이 내게는 넘치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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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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